[법률방송뉴스]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나면 조서에 지장을 찍고 나오는데요. 조서 표현이나 뉘앙스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마련입니다.

일반 서민들 입장에서는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은 이상 법적인 의미를 잘 몰라서 그러는 경우도 있고 여러 이유로 조서에 그냥 지장을 찍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관련해서 피고인이 경찰 조사 당시 작성된 신문조서나 진술조서를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면 해당 조서를 유죄 판단의 근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2016년 대구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에 출마한 A씨라고 하는데요.

A씨는 선거 과정에서 대의원 2명에게 지지를 부탁하며 현금 50만원씩을 건넨 새마을금고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 재판부는 "지역사회 내 얽히고설킨 선거 비리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며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선거 공정성을 해치고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이므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재판부가 밝힌 양형사유입니다.

A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같은 취지로 1심 징역 6개월 선고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피의자 진술조서 등의 증거능력에 문제가 있다”며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오늘(29일) 밝혔습니다.

일단 현행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아닌 경찰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만 증거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을 받은 사람으로 지목된 B씨에 대한 경찰 조서입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내내 B씨의 조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B씨의 경찰 조서가 재판에서 증거로 쓰이는 걸 명시적으로 부정한 겁니다.

하지만 1·2심 재판부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B씨의 조서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유죄를 선고한 겁니다.

대법원은 이에 "경찰이 작성한 B씨의 피의자신문조서 및 진술조서는 A씨가 그 내용을 모두 부인한 만큼 증거능력이 없다“며 ”이를 바탕으로 A씨의 유죄를 인정한 원심이 잘못됐다“고 판시했습니다.

B씨 조서의 사실 여부를 떠나 증거능력이 없는 조서 내용을 유죄의 증거로 삼은 절차상 하자가 있으므로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원심 판결 중 B씨에게 50만원을 제공한 새마을금고법 위반 부분이 파기돼야 하는데 나머지 유죄 부분과 합쳐 하나의 형이 선고됐으므로 원심 판결은 전부 파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법원 설명입니다.

경찰 조서와 달리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피고인이 법정에서 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해도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강압수사 유혹을 배제하고 법정에서 사실관계와 증거를 다투는 공판중심주의 구현을 위해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도 제한하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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