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복지공단 조사 의무 없어... "개인이 철저히 준비하는 방법밖에 없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가해자 처벌 못하고 사용자 제재 미비 보완해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됐지만 가해자 처벌 및 사용자 제재 미흡 등의 이유로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법률방송=그래픽 김현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지만 가해자 처벌 및 사용자 제재 미비 등의 이유로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법률방송=그래픽 김현진

[법률방송뉴스] 일본에서 지난 2017년 도요타자동차 사원(당시 만28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대해 지난 19일 일본 도요타시의 노동기준감독서가 '상사가 직무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괴롭힌 것이 원인'이라고 결론 내고 업무상 재해로 판정한 것이 언론에 의해 주요 뉴스로 다뤄지는 등 화제가 됐다.

업무상 재해는 산업재해(산재)라고도 하며, 노동자가 업무나 업무에 관련되는 작업 등으로 인하여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도요타자동차 사원은 직속 상사로부터 ‘바보’, ‘너 같은 건 죽는 게 낫다’는 등의 폭언을 일상적으로 들었고 반복해 질책을 당했으며, 상사의 방에 불려들어가 질책을 당할 때는 폭언이 녹음될까 우려한 상사에게 휴대폰을 압수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서 배치 4개월 만에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휴직했다가 다른 부서로 복직했지만 자리가 전 상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 측은 이 사원에 대해 “상사의 막말과 자살과의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복직 후 적응장애 치료를 그만뒀다면 병이 나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펼쳤다. 그러나 도요타시 노동기준감독서는 상사의 괴롭힘이 적응장애의 발단이 됐고 이것이 자살로 이어졌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판단이 가능할까.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는 지난 3월 간호계의 '태움'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던 고 박선욱 간호사 자살 사건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정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간호계의 고질적인 갑질 문화를 지칭하는 말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했던 박선욱 간호사의 자살이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이라는 질판위의 판정은 최초로 '태움'을 병원 사업장의 구조적 문제로 인정한 경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상사와 동료들의 괴롭힘은 자살의 원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동료 6~7명의 경찰 조서와 박 간호사가 동료들에게 태움에 대한 하소연을 카카오톡으로 보낸 간접증거들이 있었지만 질판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맡았던 권동희 노무사(법무법인 일과사람)는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사업주, 동료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했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조사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산재 조사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노무사는 “근로복지공단이 적극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조사하거나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을 산재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노동기준감독서는 노동분야 법령 위반에 대해 사무소를 조사하거나 필요한 경우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평소 개인이 철저히 대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 노무사는 “녹취나 메시지 등 괴롭힘의 직접 증거가 있으면 산재 인정에 도움이 된다”며 “최소한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라”고 말했다.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은 지난 7월 16일부터 시행됐다. 권 노무사는 이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신고해도 사용자가 조사하지 않거나 조사 후 징계 조치를 하지 않아도 사용자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노동청 등 공공기관이 화해를 권고하거나, 조사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거나 유급휴가를 주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할 경우 사용자가 이에 응하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사용자는 오직 피해자에게 해고 등 불이익을 가했다고 인정될 경우에만 처벌받게 되어있다.

권 노무사는 이에 대해 "사실상 퇴사를 감수하지 않는 한 신고할 수 없다는 뜻"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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