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직권으로 가석방, 일정기간 금주 경과 지켜보며 재판
"치유법원은 피고인이 변화된 삶 살 수 있도록 기회 주는 것"

[법률방송뉴스] 오늘(8일) 서울고법에선 30대 상습 음주운전자에 대한 좀 특별한 결심공판이 열렸습니다. 이른바 ‘치유법원’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뭔가 따뜻해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은 좀 낯설기도 한 재판입니다. 오늘 ‘앵커 브리핑’은 치유법원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34살 허모씨는 지난 1월 술을 마시고 차를 몰다가 진로 변경하는 다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고 합니다.

허씨는 피해자 구호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출동한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에도 불응했습니다. 통상 음주측정에 불응할 경우 면허취소 수준에 준해 처벌합니다.

거기다 허씨는 과거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을 2번 선고받은 전력이 있습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허씨에 대해 1심 법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했습니다.

이에 허씨는 음주운전은 잘못했지만 징역형 실형은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습니다.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리던 지난 8월 23일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허씨에게 ‘치유법원 프로그램’ 시범 실시를 제안했습니다.

치유법원 프로그램은 재판부가 직권으로 피고인을 석방한 뒤 일정기간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도록 한 뒤 규칙 준수 여부를 지켜보며 재판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허씨에 대해 정해진 규칙은 석 달 동안 밤 10시 전 귀가, 그리고 무조건적인 ‘금주’였습니다.

술에 대한 절제력과 책임감을 키워 알코올 의존을 차단해 술을 끊게 하자는 취지입니다. ‘치유’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고 재판장 직권으로 말 그대로 시범 실시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허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장원 장원택 변호사와 통화를 해보니 항소심 첫날 다른 음주운전 사고 재판과 다름없이 평소대로 재판을 진행하러 갔는데 재판부가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제안해서 좀 의외였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치유법원 프로그램을 제안 할 순 있지만 검사와 피고인, 변호인, 피고인 가족의 동의까지 다 받아야 해당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게 정원택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금주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체크하냐고 물었더니 허씨가 매일 밤 11시 전까지 10초에서 15초 가량 귀가시간과 금주 여부 등을 직접 말하는 동영상과 활동보고서를 비공개 온라인 카페에 올리는 식으로 점검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올라온 동영상 등을 피고인과 재판부, 검사, 변호사 등 감독 관여자들이 확인하며 매주 1번 채팅 방식으로 점검회의도 진행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은 통상의 형사재판과 달리 지난 석 달 간 허씨의 활동과 금주 사실을 점검하고 소감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허씨는 "3개월 금주가 어려운 일인 줄 알았지만, 어느새 금주가 습관이 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힘든 일이 있어도 술을 안 먹고 해결하는 법을 알았고 가족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정 부장판사는 "치유법원은 피고인이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며 "피고인이 성실하게 이행해온 것에 대해 칭찬을 하고 앞으로 격려를 한다는 차원에서 법정에서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결심공판이니 만큼 구형을 해야 하는 검찰은 "재판부와 피고인 모두가 열심히 참여해 프로그램이 잘 끝났다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형량을 제시하지 않고 "피고인에게 적절한 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재판부는 앞으로 한 달가량 더 허씨의 금주 여부를 더 지켜본 뒤 다음달 4일 선고기일을 열기로 했습니다.

허씨 변호를 맡은 장원택 변호사에 따르면 음주운전 피고인에 대한 치유법원 프로그램이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장 변호사 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던 건 허씨 스스로도 그리고 가족들도 허씨가 달라지고 변했다며 변화된 모습을 반기고 기뻐하며 뿌듯해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술에 대한 의존과 이로 인한 가족의 불화가 말 그대로 어느 정도 ‘치유’된 겁니다.

교도소에 갇혀 타의에 의해 술을 못 먹는 것과 자신의 의지로 술을 자제하고 끊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도소에 가고 처벌을 받아도 음주운전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죄에 상응하는 합당한 처벌도 있어야겠고 실질적인 관리 감독 등 보완해야 할 점도 있겠지만 교화나 치유 차원에서 이런 치유법원 프로그램이 제도적으로 더욱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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