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에이즈에 걸렸다고 의심할 사정 없어"

[법률방송뉴스] 국가가 외국인 영어 강사에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것은 법률에 어긋나므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뉴질랜드 국적의 A씨는 지난 2008년 회화지도, E-2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해서 국내 한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강사로 일했다.

이듬해 재계약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A씨는 에이즈 검사를 요구받았는데 이를 거절했다.

이에 재고용이 거부당한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등에 인권을 침해당했다며 진정을 냈고, 외국인 강사들에게 에이즈 검사를 의무화한 것이 인권 침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는 2015년 5월 A씨 사례에 대해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정신적·물질적 피해 보상을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도 정부에 원어민 강사에 대한 에이즈 의무검사 관행을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2017년 이런 요구를 수용해 E-2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 강사들이 에이즈 검사를 받지 않아도 국내 학교나 학원에 취업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A씨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인권침해에 따른 위자료 등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정부는 재판에서 "어린 학생들의 안전권을 확보할 공익적 필요성에 따라 교육 현장에서 긴밀히 접촉하는 원어민 교사에게 엄격한 신체검사를 요구한 것이 기본권을 침해했거나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민사35단독 김국식 판사는 하지만 오늘 정부 주장을 기각하고 "국가가 3천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에이즈예방법에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에이즈에 관한 검진 결과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원어민 교사에게 에이즈나 마약 검사를 하려는 정책의 목적은 일견 정당하지만, 당시 원어민 교사들에게 에이즈 검사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단정할 자료가 부족하고, A씨가 2008년 입국한 이후 에이즈에 걸렸다고 의심할 사정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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