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임차인 지위 승계 가능... SH공사 재량권 일탈·남용"

[법률방송뉴스] 탈북자 할머니와 함께 서울주택도시공사 공공임대아파트에 살던 미성년자 탈북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임대차 계약이 끝나자 SH공사는 돌아가신 할머니 손자로 임차인 명의 승계가 안 된다며 아파트를 비워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비워줘야 할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북한에 살던 김모씨는 지난 2000년, 부인, 아들과 함께 일가족의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5년 뒤인 2005년, 김씨의 어머니 또한 김씨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하는데 성공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김씨와 김씨의 어머니는 각각 SH공사 소유 공공임대아파트를 임차 받아 거주했습니다.

그러던 2014년, 김씨의 아들 A군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전입신고도 할머니 주소 아파트로 마쳤습니다. 그런데 2년 뒤인 2016년, 할머니가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몇 달 뒤 김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어머니와 아들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기존 거주하던 아파트 명의는 전 부인에게 넘겨줬습니다.

정리를 하면 아내와 아이와 같이 살던 김씨가 아이를 할머니 집으로 보냈고 이후 아내와 이혼하게 되면서 살던 집 명의는 전 부인에게 넘기고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2017년, 임대차 계약 갱신일이 다가오자 김씨는 어머니가 고인이 되셨으니 임차인 명의를 자신의 아들 A군 이름으로 해달라고 SH공사에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SH공사가 김씨의 아들이 미성년자라 임차인 자격이 없다며 아파트를 비워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겁니다.

김씨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항의했지만 SH공사는 ‘그런 법이 있다’며 김씨를 상대로 아파트를 비워달라는 건물명도 소송을 냈습니다.

SH공사가 말한 ‘그런 법’은 미성년자에 대한 주택공급을 제한하고 있는 구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입니다.

해당 규칙에 따라 A군이 미성년자인 점, A군의 할머니 사망 당시 김씨가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고 있던 점 등을 들어 두 사람 모두 임차인 승계 자격이 없어 임차계약이 자동 해지됐다는 것이 SH공사 입장입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동국 부장판사는 하지만 SH공사 주장을 기각하고 “미성년자도 임대차계약상 임차인의 지위를 승계할 수 있다”며 김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구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서 미성년자에 대한 주택 공급을 제한한 규정은 주택을 최초로 공급받을 때 적용되는 것이다“며 "SH공사 주장처럼 임차인 사망 시 명의를 승계할 때도 당연히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재판부는 이에 "망인과 함께 거주하던 직계혈족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탈북자에 해당하는 김씨 아들은 '서울특별시 공공임대주택 운영 및 관리 규칙'에 따라 임차인 명의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부는 “김씨는 아들의 친권자로서 SH공사에 대해 임차인 명의를 모친에서 아들로 변경할 수 있는 법적 지위에 있다”며 "임차인 지위 승계가 가능함에도 SH공사가 김씨의 명의 변경 요청을 거부한 것은 재량권의 일탈·남용으로 무효다"고 설명했습니다.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미성년자 주식부호, 미성년자 부동산부자, 이런 ‘금수저’와 탈북자인 김씨와 김씨의 미성년 아들을 굳이 대비시키고 싶진 않지만 김씨 부자가 혹시라도 서울시 임대주택에서 쫓겨날까봐 노심초사했을 걸 생각하면 짠합니다.

SH공사가 부적격자가 공공임대주택을 임차 받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 최초 임차 시 미성년자에 대한 주택공급을 제한하도록 한 해당 규칙 취지와 1심 법원 판결 사유를 헤아려 항소를 안 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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