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래피드히트 ID 시스템, 국내도 테스트용 도입... 90분이면 현장 확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 특수부대 작전에 의해 도주하던 중 자폭해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 특수부대 작전에 의해 도주하던 중 자폭해 사망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률방송뉴스] 미군의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추격 작전이 알바그다디의 자폭 사망으로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알바그다디 사망 직후 15분 만에 현장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며 최신 유전자 감식 기술을 자랑했다. 15분 만의 DNA 감식, 가능한 일일까.

■ 미국 바이오회사의 현장감식 기술... 한국에도 테스트용 도입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에 대해 “해당 기술은 미국의 세계적인 바이오기업인 어플라이드 바이오시스템(Applied Biosystem) 사에서 개발한 래피드히트 아이디 시스템(RapidHIT ID system)이다. 현장 감식을 위해 개발된 기술”이라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알바그다디 신원 확인을 위해 사용된 현장용 감식기계의 크기는 전자레인지 정도다. 감식에 걸리는 시간도 90분에 불과하다. 미군이 작전 현장에서 즉시 알바그다디의 DNA를 감식할 수 있었던 이유다.

‘허풍쟁이’라는 별명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15분 만에 감식했다”면서 약간의 ‘양념’을 쳤다고 해도 유전자 감식이 불과 90분 만에 이뤄진다는 사실은 놀랍다.

한국 국과수에도 래피드히트 아이디 시스템은 테스트 용도로 도입돼 있다. 하지만 국과수 관계자는 “시료의 종류와 양, 상태 등에 따라 사용에 제한이 많아 실제 사건에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래피드히트 아이디 시스템은 첨단 생명과학 연구장비·시약 공급업체인 자연과학이 국내 보급을 추진한 적이 있다. 이민아 자연과학 부사장은 "경찰에서 피의자의 범죄이력을 즉시 확인할 수 있는 등 효과가 있지만 인권침해 우려가 있어 국내에 보급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 어플라이드 바이오시스템 사가 개발한 휴대용 현장 유전자 감식기. 크기도 작고 유전자 샘플을 입력하면 90분 만에 결과값을 낸다. /유튜브 캡처
미국 어플라이드 바이오시스템 사가 개발한 휴대용 현장 유전자 감식기. 크기도 작고 유전자 샘플을 입력하면 90분 만에 결과값을 낸다. /유튜브 캡처

국과수 원장을 지낸 서중석 SJS법의학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원거리 군사작전을 펼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검사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휴대용 기계를 갖고 현장에서 유전자 감식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휴대용 감식기의 용도도 신원 확인만 가능하고 검사도 제한적인 경우에만 가능해 아직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서 소장은 "국과수의 경우 국내 거점지역마다 분원도 있다"고 말했다. 도서지역이 아닌 한 국내 어디에서도 관할 국과수 분원까지 유전자 이송에 걸리는 시간은 3시간을 넘지 않는다. 제주도에도 지원이 있다. 서 소장은 “지난 세월호 참사 때는 시신을 인양받은 뒤 6~7시간 내에 유전자 감식 결과를 냈다. 헬기 이동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검사 시간은 4~5시간 정도”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경찰은 피해자의 혈액과 구강조직 등 DNA 검체를 헬기로 전남 장성 유전자감식팀에 즉시 이송했고, 국과수 유전자 감식단은 24시간 대기하면서 검체가 오는 대로 감식해 유가족이 장례 절차를 치를 수 있게 도왔다.

■ "알바그다디 혈액샘플 확보"... 이라크 수감시 유전자 채취 추측

유전자 감식을 통한 범죄자 검거 절차는 △용의자의 침, 땀 등 체액으로부터 유전자를 추출(유전자량이 극소량일 경우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을 활용해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전자의 특정 부위를 수백만 배로 증폭시킨다) △유전자 프로파일링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범죄자의 유전자와 대조해 신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백악관은 알바그다디의 유전자를 기존에 어떻게 확보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밝히고 있지 않지만, 주요 외신들은 알바그다디가 2000년대 중반 미국이 운영한 이라크 포로수용소에 수감됐었기 때문에 당시 유전자 샘플을 채취해 보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미군에 협조한 시리아민주군 사령관은 이번 작전이 끝난 뒤 “알바그다디 검거 전 시리아의 쿠르드 비밀요원을 통해 그의 속옷과 혈액 샘플 등을 확보, 유전자를 확인해 은신장소에 있는 자가 알바그다디임을 확신하고 작전을 펼쳤다”고 밝혔다.

■ 유전자 20억분의 1그램만 있어도 99.9999% 확인 가능 

최근 유전자 감식 기술은 두 가지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했다.

첫번째는 극미량의 유전자에서도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보존 상태만 양호하면 감식에 문제가 없다. 두번째는 시간이다. 알바그다디 작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검사 시간은 지속적으로 단축되고 있는 추세다.

국과수는 지난 11일 화성연쇄살인 3차 사건(1986년 12월 12일 발생)의 증거물인 피해자 속옷에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는 DNA를 찾아냈다. 사건 발생 33년 만이다.

심지어 당시 피해 여성의 시신은 실종 133일 만에 논둑에 파묻힌 채로 발견됐다. 머리에 속옷이 씌워진 상태였으며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혈액형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증거물은 수분과 미생물이 차단된 상태로 잘 보존됐고 증거물에 남아있던 극미량의 세포와 유전자도 보존된 것이다.

국과수는 현재까지 화성연쇄살인 3, 4, 5, 7, 9차 사건에서 이춘재의 유전자를 발견했다. 5, 7, 9차 사건 모두 피해자의 속옷에 남아있던 극소량의 유전자를 찾아낸 것이다.

과거처럼 혈액 채취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침이나 땀, 머리카락이면 충분하다. 양도 극소량이면 충분하다. PCR 기술 덕분이다.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극소량의 유전자 정보만으로도 범인 검거가 가능한 이유다.

불과 10년 전에 사용했던 유전자 분석 키트가 1ng(나노그램, 10억분의 1그램)의 유전자를 필요로 했다면 지금은 그 절반만 있어도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일단 유전자가 발견되기만 하면 개인 식별 수준은 사실상 100%다. 통상 결과값은 99.9999%로 나오지만 유전자 비교값(보통 15~23개)이 하나라도 일치하지 않으면 확률은 제로(0) 수준으로 떨어진다.

■ 귀이개, 빗 스치기만 해도 유전자 정보 남지만... 뼈 확인은 여전히 난제

그러나 아직도 뼈에서 유전자 감식을 할 경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뼈에는 기본적으로 유전자 양이 많이 않아 건조가 잘 되는 등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검출이 안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 뼈 안에 골수가 남아 있어야 하고, 그 중에서도 유전자 확인에 적합한 조직이 존재해야 한다. 구강상피세포, 혈액, 머리카락 등으로 하는 감식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지난 28일 태평양 타라와 섬에서 발견된, 1943년 미국과 일본의 '타라와 전투' 당시 사망자의 유해 1구가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것으로 76년 만에 밝혀졌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 업무지원단 관계자가 이를 “기적같은 일”이라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미생물이 많이 사는 바다나 펄 속에 유해가 묻혀 있었을 경우 부패 가능성이 높아 유전자 감식이 안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기적 같은 일입니다"...76년 만에 유족 찾은 '타라와 전투' 한국인 유해 http://www.ltn.kr/news/articleView.html?idxno=25460).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5~6시간 만에 결과를 냈던 경우와 달리 피해자의 뼈를 토대로 신원을 확인하는 데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소요됐다. 염분 제거 등 전처리 과정을 빼고도 뼈에서 유전자를 확보하는 데만 20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뼈에서 칼슘 성분을 제거해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유전자 추출이 가능한데, 이 작업에 2~3주가 걸린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2014년 6월 백골로 발견됐을 때도 유전자 검출에 4주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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