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에 헌법소원 냈다가 군에서 쫒겨난 뒤 10년째 복직 소송 중

[법률방송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강제 전역을 당한 군법무관이 있습니다. 꼭 10년간 법적 투쟁을 벌여온 이 군법무관이 군에 복직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사건은 지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과 한홍구 교수의 ‘대한민국사’, 미국의 비판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의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부대 반입을 금지합니다.

반자본주의, 반정부·반미, 북한 찬양 서적 등이 불온서적으로 지정된 이유입니다.

이에 지씨 등 군법무관 7명은 지난 2008년 10월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이 장병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냅니다.

이를 항명이라고 여겼던지 육군참모총장은 헌법소원을 낸 지씨를 헌법소원 이듬해인 2009년 "지휘계통을 통한 건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파면합니다.

지씨는 파면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1·2심은 모두 "파면처분을 취소하라"고 지씨 손을 들어줍니다.

이에 참모총장은 이번에는 파면에서 정직 1개월로 징계 수위를 내려 처분합니다.

그리고는 국방부는 이 정직 1개월 징계를 근거로 ‘복무 부적합’ 판정을 내리고 “2012년 1월 지씨를 강제 전역시킵니다. '셀프 징계'를 근거로 한 강제 전역.

이에 지씨는 정직 1개월과 전역이 모두 부당하다며 다시 소송을 냈고, 1·2심에선 패소했지만 대법원은 다시 지씨 손을 들어줘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냅니다.

결국 파기환송심을 거쳐 지씨에게 내려진 정직 1개월 징계처분과 전역 명령은 모두 부당하다는 판결이 지난해 최종 확정됩니다.

그러자 국방부는 이번엔 또 다른 카드를 들고 나옵니다.

헌법소원 당시 지씨는 소령 계급으로 육군본부에서 송무 일을 담당했는데 국방부는 "지씨가 2015년 소령 계급의 연령정년인 45세에 도달했다"는 새로운 이유를 들어 지씨에 대해 정년 전역 및 퇴역 명령을 내린 겁니다.

지씨는 이에 “부당하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합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전직 군법무관 지모 소령이 국가와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씨가 현역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지씨에 대한 징계 사유가 대부분 인정되지 않았는데도, 법원의 판결이 확정되면 곧바로 새로운 징계나 전역 처분이 내려졌던 점을 지적하며 “현재도 현역의 지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이번에도 지씨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재판부는 먼저 "지씨가 2009∼2018년 사이 대부분의 기간 현역 지위를 상실한 것은 임명권자의 일방적이고 중대한 귀책사유에 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에 "법령상 사유 없이 오직 임명권자의 일방적이고 중대한 귀책 사유 탓에 파면처분이 내려졌고, 그로 인해 직무수행 기간이 줄어들어 진급하지 못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된다면 예외적으로 현역의 지위를 상실한 기간만큼 계급 연령정년이 연장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지씨와 같은 시기에 임용된 군법무관 대부분이 중령 진급에 실패하지 않았고, 당시 중령 계급의 인원이 부족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지씨가 중령으로 진급하지 못한 것은 위법한 처분 때문이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입니다.

이에 재판부는 "지씨는 현역 지위를 상실한 6∼9년가량 계급 연령정년이 연장된다“고 판시해 지씨가 군에 복귀해 중령으로 진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려주었습니다.

불온(不穩). 사전적으론 ‘온당하지 않음’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의미로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돼 있습니다

‘불온’이라는 단어는 원래 메이지유신 이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국가로 나가던 일본 제국주의 시절 “천황제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민족민중해방 같은 것을 주장하는 체제 개혁 세력에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단어가 쓰이기 시작됐다”는 것이 인하대 국문학과 김명인 교수의 설명입니다.

조선을 침탈한 일제가 독립운동가 같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들을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 불렀던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만주 군관을 지낸 박정희 소장이 집권하면서 볼온은 군사독재 시절 체제를 부정하거나 저항하는 모든 세력이나 사람에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며 불온 딱지를 붙여 처벌해 왔습니다.

일제와 군사정권 시절 낡은 유물인 ‘불온’ 딱지를 되살려 낸 이명박 정부의 국방부는 그렇다고 밀어 놓고.

그런데 몰랐던 건 지 소령에 대한 파면과 강제전역, 그리고 정년 전역 및 퇴역 명령. 십년에 걸쳐 진행되어온 지난한 복직 소송.

그래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이야 ‘보수정권’이니 그렇다 쳐도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 많은 시국 사건을 맡았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국방부가 지 소령을 군에서 축출하기 위한 소송을 계속해 온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어렵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이면 이제 1심인데 국방부는 항소를 해서 재판을 계속할 생각인 건지도 궁금하고. 안 바뀌는 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안 바뀌는 건지.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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