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용 중단 권고"에 전문가들 "뒤늦게... 담배사업법 당장 바꿔야"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다양한 액상형 전자담배. 해외 직구를 감안하면 제품의 종류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유튜브 캡처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다양한 액상형 전자담배. 해외 직구를 감안하면 제품의 종류도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유튜브 캡처

[법률방송뉴스] 정부가 지난 23일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국민들에게 사용을 중단하라고 권고하고 나섰다.

하지만 연초가 아닌 니코틴 용액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위험성은 이미 지적돼 왔다. 24일 법률방송 확인 결과 액상형 전자담배를 법적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기 위한 법률안은 최근 3년 간 국회에 23건이나 발의됐지만, 단 1건도 처리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담배의 정의를 새롭게 규정하고, 31년 동안 바뀌지 않고 있는 담배사업법부터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담배의 정의에 니코틴 용액을 포함하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일부개정 법률안(2016년 10월 31일 발의) 등 23건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들 중 단 1건도 처리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법망을 피해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전자담배는 30~40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해외 직구 등을 통한 구매는 파악 자체가 힘들 정도로 그 종류가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지난해 9월 20일 담배 성분 분석 및 공개를 주내용으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법제사법위원회로 이관했지만 아직도 이 법안은 법사위 2소위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가 역할을 방기하지 말고 조속히 관련 법령을 통과시켜야 규제작업에 빨리 나설 수 있다"며 "전자담배 성분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없고 인체영향 사례분석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필요하다면 우리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성분분석법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유진(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대한금연학회장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관리와 규제, 모니터를 전혀 안 하고 있다가 중증 폐질환자가 발생하니까 뒤늦게 정부가 개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며 "법안을 발의한 것이 언제인데, 그게 통과됐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회장은 또 "국민건강증진법도 전자담배 기기를 담배유사제품이라고 해서 담배제품으로 포함시켜 홍보를 하면 안 된다고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개정안을 올렸지만 사실 그 정도가 약하다"며 "오래된 담배법을 전체적으로 개정해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전자담배 기기도 담배제품으로 분류하고 관리하고 규제한다"고 말한 백 회장은 "우리나라처럼 '1+1' 판촉행사나 할인행사를 하거나 기기 디자인 광고를 하는 나라는 없다. 청소년을 유인하기 위한 이런 행태가 전혀 규제가 안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제2조(정의)에서 담배를 '연초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담배의 정의는 담배사업법이 제정된 지난 1988년 이후 바뀌지 않고 있다.

연초의 잎이 아닌 줄기나 뿌리, 니코틴 용액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애초부터 법적 규제 및 성분분석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담배와 동일한 용도와 유해성을 가지고 있는데도 '공산품'으로 유통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결국 이를 사용하는 흡연자나 간접흡연에 노출된 비흡연자들 모두 건강에 어떤 악영향이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담배를 '담뱃잎, 줄기, 뿌리 등을 포함한 것이 연초로 만들어지거나 파생된 제품으로 담배제품의 구성물, 일부분 또는 악세서리를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또 2007년 이후 새로 출시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시판 전에 FDA의 판매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액상형 제품은 판매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당초 2022년까지 제출하도록 했다가 지난 7월 법원 판결에 따라 내년 5월까지로 앞당겼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3일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3일 '액상형 전자담배 안전관리 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액상형 전자담배는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중증 폐손상 및 사망 사례가 다수 발생한 심각한 상황으로, 인과관계가 명확히 규명되기 전까지는 사용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며 "특히 청소년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박 장관은 "효과적인 금연정책 추진과 담배제품 안전관리를 위해 '담배제품 안전 및 규제에 관한 법률'(가칭) 제정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우선 국내 유통 액상형 전자담배 제조·수입업자들로부터 구성성분 정보를 받아 THC(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대마 유래 성분)·비타민E 아세테이트 등 7가지 유해성분 포함 여부를 분석해 11월까지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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