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 불명예... 영국의 11배 법원, 잇달아 "과도한 업무가 사망 원인" 판결... 유족 손 들어줘 근로복지공단 산재 인정률 점점 낮아져... "제도 보완해야"

 

 

[유재광 앵커] 오늘은 ‘근로자의 날’입니다. ‘쉬는 날’ 인데요. 관련해서 말 그대로 살인적인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숨진 노동자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LAW 인사이드’, 오늘은 이 초과근무와 산업재해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스튜디오에 박가영 기자 나와 있습니다.

박 기자, ‘산업재해’ 말 그대로 ‘재해’인데 업무를 하다가 이렇게 목숨을 잃는 경우가 우리나라에서 다반사라고요.

[박가영 기자] 네, 한 해 약 2천400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데요,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작은 칠레나 멕시코보다도 산재 사망자 수가 많고, 영국과 비교하면 11배, 일본이나 독일보다 5배 많은 수치입니다.

 

[앵커] 부끄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데요. 업무 중에 사망했다고 다 산재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죠.

[기자] 그렇습니다. 업무 수행 중에 발병했다 하더라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상의 업무상 사유에 의한 사망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업무 때문에 사망했다’ 이렇게 볼 만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합니다.

 

[앵커] ‘상당인과관계’라, 좀 어렵기도 하고 애매하기도 한데요.

관련해서 오늘 법원 판결이 하나 나왔죠. 해부학적으로 사인이 불분명한 경우에도 산재 판결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지난 2014년 5월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입사한 A씨에 대한 판결인데요.

A씨는 이듬해인 2015년 2월 말 새벽 5시쯤 야간근무를 하다가 회사 정수기 앞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습니다.

A씨는 쓰러지기 전 12주 동안 매주 63시간씩 근무를 했었는데요. 이는 법정 초과근무 상한시간인 한 주 60시간을 초과한, 그러니까 초과근무 한도도 초과한 노동 강도로 12주를 근무한 겁니다.

A씨의 유가족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보상금 지급을 청구했는데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씨가 2015년 1월 초부터 사망 2주 전까지 40여일 동안 하루밖에 쉬지 못했고, 사고 발생 한 달 전부터는 야간근무로 전환돼서 과도한 신체적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 손을 들어줬습니다.

유족 주장대로 과도한 업무를 사망 원인으로 본 것입니다.

 

[앵커] 이게 꼭 이렇게 재판을 통해 산재 판정을 받아내야 하는 건가요? 관련 규정이 어떻게 되나요.

[기자] 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을 받는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여기에 적시된 ‘상당인과관계’라는 게 좀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에는 각 질병에 관련된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 기준을 두기는 했습니다. 특히 고용노동부 고시에는 더 자세히 기준이 제시돼 있는데요, 과로사와 밀접하게 연관된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의 경우 ‘발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 양이나 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한 경우’엔 ‘관련성이 강하다’ 즉 산재로 봐야 한다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도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보고 있고, ’야간근무의 경우는 주간근무에 비해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고용노동부 고시 대로라면 A씨의 경우 12주 동안 초과근무를 했으니까 당연히 산재 판정을 받았어야 했는데, 이게 왜 소송까지 간 겁니까.

[기자] 네, 한마디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인정에 참 인색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입니다.

공단은 공단대로 어떤 케이스에 대해서 한 번 인정해주면 그 후로 계속 해당 결정이 근거가 돼서 다음 번 산재 인정 여부를 가늠할 때 부담을 안게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가 오늘 취재를 해보니까 특히 과로사에 대한 인정 비율이 점점 더 인색해지고 있는데요.

2004년엔 산재 신청의 70%, 그러니까 10건 신청되면 7건 넘게 산재로 인정됐는데요, 이 수치가 작년엔 22%, 10건 신청하면 겨우 2건 정도만 산재로 인정되는 정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앵커] 근로복지공단은 근로자들의 복지를 위하라는 조직인데, 이렇게까지 과로사 산재 판정 비율이 떨어진 뭐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기자] 네, 2008년 7월 법 개정이 돼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라는 제도가 도입됐는데요, 이전에는 ‘업무상 사고’와 ‘업무상 질병’ 모두를 근로복지공단에서 결정했지만 이를 분리해 업무상 질병의 경우 별도의 전문 판정위원회를 두고 여기서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문제는 이 위원회에 전문 의료인이 일부 위원으로 참여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여기서 과로사와 업무의 연관관계를 입증하고 인정받는 것이 훨씬 까다로워졌다, 즉 좋은 취지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법 적용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노동계와 법조계에선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앵커] 되돌아가서 얘기하면 결국 소송으로 산재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잖아요.

[기자] 네, 말씀하신대로 소송에서 입증 책임은 당연히 산재를 주장하는 쪽, 그러니까 유가족 측에 있습니다.

산재 판정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고인의 근무시간과 근무형태, 업무 환경, 업무 강도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는데 문제는 유족들이 이런 정보를 입수하기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일단 회사 측에 관련 자료를 최대한 요구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확인하는 게 중요한데요, 법무법인 수호 김남석 변호사 얘기 한 번 들어보시죠.

[김남석 변호사/법무법인 수호]

“유족들 입장에서는 이게 나중에 소송으로 갔을 때까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처음에 ‘진단서’ 같은 것을 받으실 때 아니면 ‘사체 검안서’ 이런 것을 받으실 때 반드시 참여를 하시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주장을 하셔서 소견서에서 가급적 업무와 관련됐다는 취지의 소견서를 받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급적이면 평소에 망인이 사용하셨던 컴퓨터라든가 서류라든가 이런 것을 장례 절차가 진행되고 나면 다 없애버리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가급적 남겨두시고요. 회사에서도 사망사고가 나고 나면 근로했던 직원들의 기록을 삭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도 회사에 찾아가셔서 '가급적 기록을 보존해주시라'고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앵커] 네, 이렇게 산업현장에서 돌아가신 분들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남편, 아들이자 딸일 텐데, 급작스런 죽음에 황망하기 그지없을 유가족들 보고 ‘산재 판정 받으려면 업무 관련성 자료 잘 챙겨놔라’ 할 수밖에 없는 현행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LAW 인사이드’ 박가영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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