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총사퇴, 증거 부동의, 무더기 증인, 재판부 기피... '법잘알'들의 합법적 '재판 갑질'
변호인 총사퇴, 증거 부동의, 무더기 증인, 재판부 기피... '법잘알'들의 합법적 '재판 갑질'
  • 신새아 기자
  • 승인 2019.09.25 1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형사소송법 제도와 절차 악용해서 고의로 재판 지연"
"구속기한 만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기 위한 꼼수"
"구속기간 연장·조건부 석방 등 고의 지연 차단 필요"

▲유재광 앵커= 이른바 ‘법잘알’,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재판 갑질’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고의적인 재판 지연, 국회에선 오늘(25일) 이런 고의적 재판 지연 방지 방안을 모색해보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LAW 인사이드’, 신새아 기자 나와 있습니다.

고의적 재판 지연, 이게 뭔가요.

▲신새아 기자= 말 그대로 재판을 고의로 질질 끄는 겁니다. 앞서 말씀하신 대로 고위 법관 출신 등 법을 잘 아는 ‘법잘알’들이 재판에서 이런 지연 전술을 잘 쓴다고 합니다.

관련해서 오늘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반 국민들은 재판부의 괘씸죄가 두려워서라도 고의적 재판 지연 전략을 쓸 수 없는데 권력층이나 ‘법잘알’들이 특권처럼 재판 지연 전술을 쓰고 있다”고 꼬집었는데요.

이번 토론회는 이런 고의 재판 지연 방지 대책을 모색해보기 위해 조응천 의원과 한국형사소송법학회 공동 주최로 마련됐습니다.

▲앵커= 그런데 재판을 어떻게 고의로 지연시킨다는 건가요.

▲기자= 피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형사소송법 절차나 규정을 거꾸로 이용하는 겁니다. 변호인 총사퇴, 증거 부동의, 무더기 증인신청, 재판부 기피신청, 위헌법률심판 신청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하는데요.

예를 들어 변호인이 사퇴하면 국선 변호인 선임해주느라 시간이 걸리는데 국선변호인이 선임되면 다시 변호사 선임계를 내고 변호인으로 나서는 식으로 재판을 끄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효력이나 채택에 동의하지 않으면 하나부터 끝까지 해당 증거의 증거능력을 따지고 증인들을 불러야 하고 재판이 하염없이 늘어지는 식입니다.

▲앵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기자= 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진행 중인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이 있습니다. 변호인단 일괄사임, 재판부 기피신청, 200명 넘는 증인 신청 등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 재판 지연 전술 교과서라면 교과서입니다.

임 전 차장에 국한되지 않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포함해 재판에 넘겨진 다른 전·현직 고위 법관들도 거기서 거기 ‘도긴개긴’이라고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도 항소심에서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증인으로 신청했는데 채택된 15명 중 13명이 출석을 거부해 다음 재판에 다시 부르고 다음 재판에 다시 부르고 ‘증인 불출석’이라는 새로운 재판 지연 전술을 창출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어차피 구속돼 재판을 받는 마당에 이렇게 재판을 질질 끌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뭔가요.

▲기자= 구속기간과 연관돼 있습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구속기간을 2개월로 정해놓고 2개월씩 최대 2차에 한해 구속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즉, 1심 최대 구속기간은 6개월이 됩니다.

그래서 “보통 형사사건 같은 경우는 이 구속기한 내에 통상 1차 연장 기한인 구속 3~4개월 안에 선고를 내린다”는 것이 이상원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사법행정권 남용이나 대통령이 연루된 뇌물 사건 등 대형 사건의 경우에 수사 기록 자체가 워낙 방대하고 사안이 미묘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해서 구속기한 만료 전에 선고를 내리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이상원 회장은 이와 관련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건 내용이 복잡해지면서 법이 정한 구속기한 내에 모든 공소사실에 대한 심리를 충실히 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러다보니 피고인들이 특히 법을 잘 아는 피고인들일수록 형소법 절차와 제도를 이용해 일단 시간을 끈 뒤 구속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상태서 재판을 받기 위해 재판을 지연한다는 것이 토론회 참가자들의 지적입니다.

▲앵커= 그래서 어떤 대안들이 제시됐나요.

▲기자=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논의가 됐는데요. 구속기간 자체를 연장하는 방안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하더라도 재판이 진행 중일 경우 ‘보석’처럼 주거지를 제한해 석방하는 등 조건부로 풀어주는 것, 이렇게 두 방안입니다.

후자와 관련해서 조응천 의원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고의로 소송을 지연하는 것이 명백하게 인정되는 경우’와 ‘사건 당사자가 다수이거나 사실관계가 복잡한 경우’ 이렇게 두 경우에는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이 되더라도 ‘조건부’로 석방시키자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오늘 발제를 맡은 주승희 덕성여대 법대 교수는 전자, 그러니까 구속기간 연장 쪽에 무게를 실었는데요.

"특수한 상황이나 특수한 범죄에 대해선 피고인에 대한 구속기간 갱신을 허용하도록 입법화하는 게 실체적 진실 발견 뿐 아니라 피고인 권익보호에 도움이 될 것" 이라는 주승희 교수의 말입니다.

▲앵커=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기자= 네, 독일의 경우 미결 구속기간은 6개월이지만 공판이 시작되면 판결 선고 시까지 구속기간의 진행이 정지돼 피고인에 대해선 사실상 구속기간 제한이 없다고 합니다.

일본도 공소제기후 원칙적으로는 2개월이지만 1개월마다 제한 없이 구속기간 갱신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 정말 피고인 권익 차원이 아닌 다른 목적의 고의적 재판 지연 여지를 원천 차단하고 있습니다.

▲앵커= 네, 무조건 가둬놓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법잘알’들이 꼼수를 부리는 걸 차단할 법 제도 마련은 필요해 보이네요. 오늘 잘 들었습니다.

 

신새아 기자 saeah-shin@lawtv.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