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 기자= 안녕하세요. ‘영화 속 이런 법’의 홍종선입니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건 100% 정확한 사실이 아니어도 비난받지 않죠. 하지만 누군가를 비판하자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야 합니다.

요즘 일본의 경제 보복에 분노해 일본 제품 사지도, 쓰지 않는 분들 많더라고요. 이 영화 보시면 내가 감정적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근거가 생기실 것 같아 준비했습니다. 어떤 영화 인지 이조로 변호사와 이야기 나눠보죠. 어서 오세요.

▲이조로 변호사= 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조로 변호사입니다..

▲홍종선 기자= 네. 오늘의 영화 소개해 주시죠.

▲이조로 변호사=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전투’입니다.

▲홍종선 기자= 영상 보니까 또 ‘봉오동 전투’ 생각나네요. 영화 어떻게 보셨어요?

▲이조로 변호사= 이번 영화를 감사한 마음으로 봤습니다. 이 영화가 일제강점기 1920년 6월 7일, 그러니까 중국에 있는 봉오동에서 대한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해서 한 전쟁을 영화화 한 거잖아요.

근데 이게 다른 영화 같은 경우에는 왕, 장군 등 영웅 중심으로 그려지는데 이 영화 같은 경우에는 독립군 하나하나의 사연을 중심으로 엮어 놓은 것 같아서 굉장히 실감 나는 부분이 있었어요.

'봉오동 전투'하면 역사책에서 배운 게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전투로써 독립군이 승리한 전투라는 기억 정도만 있어요. 근데 이 영화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힘들다고 말하잖아요.

근데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일제강점기 시대에 어려웠지만 독립을 꿈꾸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던 독립군 하나하나의 사연과 의지, 용기가 그려지고 있어서 굉장히 좀 새롭게 다가온 거 같아요.

▲홍종선 기자= 사실 배우들도 다 연기 너무 잘해서 거의 국사책을 찢고 나온 듯이 정말 그 시대의 사람들 같잖아요. 그들이 연기를 잘했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영웅 중심의 전쟁이 아니라 정말 이름만 독립군이지 명예도 없고 월급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정말 나라를 위해 정말 지금 우리가 자유를 누리라고 목숨을 바치셨구나. 아주 뭉클했는데, 어느 배우의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드셨어요? 이조로 변호사는.

▲이조로 변호사= 배우 이야기를 먼저 전하기 전에 특히 유해진씨 있잖아요. '황해철' 역을 한 그분 같은 경우 역사책에 독립군 사진 나오잖아요. 그 사진하고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얼굴이 나온 장면 자체가.

근데 유해진씨라든지, 조우진씨라든지, 분대장역을 한 류준열씨 같은 경우, 특히 일본군 대장역을 한 키타무라 카즈키씨 이분들의 연기가 다 특별하게 흠잡을 데 없이 정말 오밀조밀하게 딱 구조에 맞춰 연기가 잘된 것 같아요.

근데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말한다고 하면 이 영화가 영웅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독립군 하나하나, 농사짓던 독립군, 염소 키우던 독립군, 하나의 사연을 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 장면이 일본군들이 우리 양민들을 이유 없이 학살하는데 거기에다 즐기잖아요.

사냥하듯이 하는 그런 장면 하나하고, 이장하 역할을 맡았던 류준열씨가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 버릴 것을 각오하면서 일본군을 유인하는 장면이라든지, 특히 황해철역의 유해진씨가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홍종선 기자= 자, 또 이쯤에서 뭐든 물어봐도 대답 나오는 이조로 변호사니까 묻겠습니다. 사실 봉오동 전투 저도 역사책에서 ‘독립군이 이룬 첫 번째 승리’ 이정도 뿐이었어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저런 과정을 통해서 됐구나. 독립군 연합군이 착착착착 마지막에 몰려드는데 그 전까지 너희 진짜 류준열 우리 이장하 죽일 거야? 다 어디 갔는지 화까지 났었거든요. 뭐 저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잘 알지 못하실 수도 있다 싶어서 여쭙겠습니다. ‘봉오동 전투’ 어떤 전투입니까?

▲이조로 변호사= 예. 역사책에서 배운 거라고는 ‘홍범도 장군이 이끌어서 봉오동에서 대한독립군이 승리한 전투’ 정도로만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보니까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해서 거둔 첫 번째 전투라고 합니다.

근데 독립군 연합부대라고 하면 ‘대한독립군’, 그리고 ‘국민회군’, 그리고 ‘대한북로독군부’, ‘대한신민단’이라는 독립군 부대가 연합해서 일본군 제19사단 중 ‘월강추격대대’라고 나오잖아요. 거기를 격파한 전투입니다.

이게 1920년 6월 4일 대한신민단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을 공격하고 그리고 대한북로독군부 독립군이 삼둔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해오니까 거기에 약이 바짝 오른 일본군 부대가 월강추격대대를 결성해서 우리 독립군부대 근거지인 봉오동까지 쳐들어오게 됐을 때 둘러싸서 일본군을 섬멸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정규군을 상대로 한 본격적인 전투에서 첫 번째 승리라는 것이 굉장히 크고, 이 전투를 계기로 대한독립군의 사기가 굉장히 진작되었고, 그리고 이 전투를 통해 대한독립군 같은 경우도 한국으로 진격해서 우리 독립을 쟁취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무장독립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게 1920년 6월 7일에 있었지만 ‘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이 이끈 북로군정서군과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에 대승한 '청산리 대첩'의 경우도 같은 해 10월에 있었던 전쟁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어디로 이동하죠? 청산리라고 나오는데 청산리 전투와 연결되는 거여서 항일 무장투쟁에 굉장히 족적을 남긴 첫 번째 승리로써 기념비적인 승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홍종선 기자=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속에서 법률 이야기를 꺼내보죠. 영화 첫 장면이 어린 시절의 황해철 유해진씨의 어린이역이 동생을 업고 일본군한테 길을 안내해줘요. 근데 그 대가로 먹을 것을 주는데 거기에 폭탄이 들어있잖아요. 그래서 동생이 이거를 안고 사망을 해요.

거기서 유해진 황해철씨의 분노가 끓었겠죠. 이런 일본군, 길도 알려줬는데 폭탄을 준 이거 어떤 죄를 물어야 할까요.

▲이조로 변호사= 살인죄입니다. 대가로 먹을 것을 주는데 지금 시대가 아니고 어려운 시대, 지금 시대에도 먹을 것을 주면 당연히 열어보는 게 사람의 당연히 인지상정이잖아요. 근데 그때는 먹고 살기도 힘들어서 길을 안내한 대가로 먹을 것을 줬는데 거기에 폭탄이 들어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이거는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거나, 칼로 찔러 죽이는 것과 똑같은 살인죄입니다. 이거 똑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유해진씨의 동생에 대해서는 살인죄, 그리고 유해진씨에게는 살인을 하려다가 상처만 입혔잖아요. 그래서 살인미수죄. 그래서 살인죄와 살인미수죄가 성립할 것 같습니다.

▲홍종선 기자=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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