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안희정 징역 3년 6개월 선고 원심 판결 확정
여성단체 "성폭력사건 가해자 중심 문화 벗어나야"
법조계 "성인지 감수성 개념 불명확·모호" 지적도

[법률방송뉴스] 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 대법원이 오늘(9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 입장과 눈높이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판결입니다.

선고 직후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는 환영의 뜻을 밝힌 가운데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모호하다"는 논란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현장을 취재한 장한지 기자가 그동안의 쟁점과 논란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안희정 전 지사가 받는 혐의는 모두 10개입니다.

러시아 출장지에서 수행비서 김지은씨를 성폭행하는 등 피감독자 간음 혐의가 4개입니다.

여기에 관용차에서 김씨를 추행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그리고 호프집과 호텔 등에서 김지은씨를 추행한 일반 강제추행 혐의 5건, 이렇게 모두 10개입니다.

재판에선 성폭행 피해를 호소한 김지은씨의 진술에 피해자로서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냐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됐습니다.

1심은 김지은씨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10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간음 사건 이후 피해자가 피고인과 동행해 와인바에 간 점, 지인과의 대화에서 피고인을 적극 지지하는 대화를 한 점 등을 고려하면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게 1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하지만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고 도지사 집무실에서 강제추행한 혐의를 제외한 9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고할 목적 등으로 허위의 피해 사실을 지어내 진술했다거나 피고인을 무고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 2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이에 2심은 안 전 지사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오늘 "2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징역 3년 6개월 형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특히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이상 그 진술의 신빙성을 특별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른바 '피해자답지 않은 행실'을 이유로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기각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입니다.

대법원은 나아가 김지은씨가 스스로 호텔방에 찾아간 것 등을 두고서도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 세력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업무상 위력'을 폭넓게 인정한 판결로 성범죄는 피해자의 입장과 시선에서 핀단해야 한다는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에 충실하게 입각해 내린 판결입니다.

대법원 선고 직후 여성단체들은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판결은 '보통의 김지은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승리"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정혜선 변호사 / 김지은씨 공동대리인단]
"눈에 보이지 않는 위력이 성폭력으로 이어질 때 그러한 성폭력이 반복됐을 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또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재판하기 위해서 법원은 어떠한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해야 옳은지 이 사건의 재판과정과 판결이 그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나아가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꽃뱀'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는 가해자 중심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오늘 대법원은 '피해자다움'에 갇혔던 성폭력 판단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오늘 대법원은 '피고인의 진술 신빙성'이 성폭력의 중요한 판단기준이어야 함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피해자다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성인지 감수성 취지를 감안해도 개념 자체가 아직은 법적으로 불명확하고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자 진술에 전적으로 의지할 경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이 유독 성범죄에 대해서만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양측 주장이 극단적으로 다투어지는 경우에도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할 경우 자칫 억울한 피고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
"이번 판결처럼 위력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서 여성들의 지위를 폭넓게 보호하려는 대법원 판결은 맞습니다. 다만 위력이 있었는지가 극단적으로 다퉈지는 경우에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거해서 무리한 판결을 내렸을 때 억울하게 처벌을 받는 남성들이 생길 수 있어서 그것이 조금 우려됩니다."

앞서 안희정 전 지사 부인 민주원씨가 하급심 재판 과정에 김지은씨에 대해 ‘성폭행이 아니라 불륜’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것도 이런 지적과 맞닿아 있습니다.

김지은씨는 오늘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앞으로 세상 곳곳에서 숨죽여 살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분들의 곁에 서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논란과 반론이 있음에도 성범죄 재판에 있어 성인지 감수성이 법원 판결 경향으로 확립될 거라는 데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다소 모호한 성인지 감수성 개념을 법리적으로, 구체적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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