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필자는 2학기부터 연구년 기간이라 미국 대학에 방문교수로 와 있다.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절차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은행계좌 개설이다.

생활비를 본국 은행으로부터 송금받기 위한 계좌가 필요하고 상품구입에 사용할 체크카드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은행거래시스템은 우리나라 시스템과 많이 다르다.

은행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지만 여권만으로 신분증명이 되지 않고, 추가로 “주소지에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곳 대학교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신분증을 제시했고 아울러 J비자, DS-2019, 대학교 초청장, 주소가 기재된 주택임대차 계약서 등 모든 서류를 은행측에 제시하였지만 이러한 서류로는 거주사실이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주사실'은 주소지로 배달된 각종 청구서 등 우편서류에 의해서만 증명된다고 한다. 미국에 도착한지 며칠 되지 않아 청구서 등 우편물을 받을 시간이 없었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절차는 중고차 구입후 자동차등록관청에 가서 등록서류를 변경할 때도 같았지만 다행히 이들은 DS-2019 서류로 거주사실을 인정하고 증서를 발급해 주었다. 이 서류를 가지고 은행에 가서 겨우 은행계좌를 개설하였다.

이러한 절차는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절차지만, 은행거래는 현재 확실히 거주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하게 해 준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만들어서 철저히 지키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지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서류에 기재된 주소지로 연락해도 연락이 닿지 않는 이른바 '대포통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대포통장이 거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미국 은행은 계좌를 개설해도 통장을 발급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통장을 은행거래의 생명으로 알고 통장이 없으면 예금인출이나 송금도 할 수 없고 신용카드도 발급받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 은행은 기본적으로 통장을 발행하지 않으며 그저 계좌번호만 부여할 뿐이다. 사용내역은 인터넷으로 은행에 접속하면 모든 거래내역을 볼 수 있다.

또한 인터넷으로 거래할 때 이른바 '공인인증서'가 필요하지 않아 매우 손쉬운 은행거래를 할 수 있다. 아울러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설치해야 하는 많은 '액티브X'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우리나라 금융거래에서는 해킹 위험 때문에 액티브X가 없으면 안 되고 공인인증서도 필수이며 실제로 이 절차를 안 거치면 거래가 안전하게 이루어진 건지 불안하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은행거래에서도 금융소비자의 편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절차가 신속히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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