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죄, 공연성·전파가능성 있어야... 1:1 독대는 모욕죄 불성립"

▲홍종선 기자= '영화 속 이런 법', '나랏말싸미', 아까 처음에 그런 얘기 하셨어요. “여기서 왕과 신하가 굉장히 격 없이 대화하는 게 당황스러웠다.” 사실 그래요. 거기서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하죠.

정인지가 중국 황제 입장에서 보면 세종 당신이나 나 신하나 똑같은 신하다. 제가 조선인은 아니지만 이게 한국사람으로서 갑자기 제가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거 신하가 일국의 왕에게, 한 나라의 왕에게 모욕죄가 아닌가요?

▲이조로 변호사= “그저 졸장부다”, “같은 신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모욕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면 성립되는 범죄’인데요.

모욕이라면 법률적으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사람의 인격을 경멸하는 추상적인 가치 판단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모욕하면 그냥 욕하는 거, 사람에게 경멸적인 표현을 하는 것이 모욕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모욕에는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연히 다른 사람을 모욕했을 때 성립한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여기서 '공연'이라는 것이 공연성입니다. 공연성은 ‘전파 가능성’을 말하는데 전파 가능성이라는 것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이게 퍼질 가능성, 전파될 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세종대왕과 신미 스님,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인 정인지, 이 두 사람은 단 둘이 대화를 하잖아요. 전파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성이 없어서 모욕죄가 성립되기는 힘들어 보이고 모욕죄 같은 경우 친고죄로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되는 범죄인데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의 고소가 취하되면 불기소 처분되고 재판단계에서는 공소기각으로 끝납니다.
  
▲홍종선 기자= 아, 1대1 독대했을 때, 세종과 신미, 세종과 정인지는 1대1 독대했을 때 이야기 했기 때문에 이것은 모욕죄 아니다. 무죄입니다. 두 분.

여기서 보면 국교는 분명히 유교란 말이죠.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요. 왕도 그렇고 신하들, 사대부들도 다. 그런데 소헌왕후는 불교이고, 신미 스님은 당연히 불교지만 영화의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백성들은 피지배계층은 불교를 믿었단 말이에요.

이때 국교를 유교로 삼아도 이때도 백성들은 불교여서 종교의 자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지금도 우리나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죠.

▲이조로 변호사= 현재 우리나라는 당연히 종교의 자유가 보장됩니다. 헌법에도 ‘헌법 제20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호하고 있고, 국교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종교와 정치는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정교분리를 하고 있고 종교의 자유 같은 경우 종교의 핵심은 신앙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신앙은 초월적 세계에 대해 또 피안의 세계에 대해 주관적 확신을 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종교자체는 어떤 종교든지 종교 자체의 교리 자체는 굉장히 옳은 말만 써있는 것 같아요. 똑바로 바르게 살아라. 서로 도와가면서. 그런데 종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종교 자체는 괜찮은데 좋은데,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다툼과 전쟁이 항상 있어서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 같아요.

영화 내용에서도 불교신자인 신미 스님과 그리고 유교를 믿는, 유교가 사후세계가 없으니 종교로 볼지 안 볼지 좀 문제가 되겠지만 유교를 믿는 유자들 간의 대립, 정신세계의 대립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공자님의 가르침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똑바로 옳게 살아라' 인데 믿는 사람들이 자기쪽의 입만 생각해서 다투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홍종선 기자= 어느덧 또 말미에 이르러 이 변호사님이니까 묻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뭘 느끼셨나요?

▲이조로 변호사= 저 같은 경우 이 영화 내용을 보면서 그 당시에는 양반들이 지식과 문자를 독점했잖아요. 이런 양반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적 약자인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다는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정말 경의를 표합니다.

▲홍종선 기자= 오히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이조로 변호사= 근데 이제 보통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하면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지식 자체가 많다는 걸로 대우 받을 이유는 전혀 없는 것 같아요. 뭔가가 뛰어나다, 지식이 많다 이런 것은 이걸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했다고 한다면 존경 받아야 하지만 많다는 것 자체로 대우받아야 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통 공부를 하고 지식을 쌓아가면 보통 지식이, 이 비유가 맞을지 모르지만, 이 스튜디오가 세상 전부의 지식이라고 한다고 하면 평생을 배워봤자 자기가 손톱만큼도 못 배울 것인데 그 범위 내에 벗어나면 틀린 거고 그 범위 내에 들어와야지만 맞는 거라고 자기 나름대로 그 지식에 대해 철옹성을 쌓잖아요.

지식을 쌓는 이유가 자기가 자유롭고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하려는 건데 지식으로 철옹성을 쌓아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뭔가를 배운 사람들이 다 그렇진 않지만 지식의 철옹성을 쌓아 상대방을 배척하는 수단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지식은 자기를 자유롭고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지 자기의 세계라든지 자기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홍종선 기자= 맞습니다. 우리를 더 성숙하게 하는 지식이어야 지식이지 그 지식의 독점을 기반으로 누군가를 누르고 지배하려고 하면 정말 무식한 행동인 것 같아요. 그 말씀에 공감하면서 오늘도 여기서 인사 드리죠. 고맙습니다.

▲이조로 변호사= 네. 감사합니다.

▲홍종선 기자= 영화 ‘나랏말싸미’에 노승으로 나오는데 오현경 배우 이야기 잠시 나눴었죠. 여든을 넘긴 노 배우의 정정한 연기를 보노라니 무언가 가슴이 울컥하는 존경심이 일더라고요. 영화 ‘사자’에서 혈혈단신 악과 맞서 싸우는 이른이 다 된 안성기 배우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는데요.

오현경 배우와 전미선 배우가 독대한 장면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전미선 배우가 그 대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 나이까지 연기를 해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겠다는 삶의 의지를 다져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전미선 배우의 무게감 있는 연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그 생전 마지막 모습, 영화로 만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문구 ‘아름다운 배우 전미선’을 잊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다음주에 다시 올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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