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청처, 법관모임 학술행사 축소 '외압' 논란으로 발단 진상조사위 "사법행정권 남용 있었다"... "블랙리스트 존재 정황은 없다" 법조계 안팎 "진상조사위 결론 모호"... '수사해야" 주장도

 

 

[앵커] 법조계 소식 이면을 들여다보는 LAW 인사이드, 오늘은 이른바 ‘법원개혁 논의 저지 파동’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법원을 출입하는 이철규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법원개혁 논의 저지 파동’ 말만 들어보면 몇 십년 전 이른바 판사들의 집단 항명 파동인 ‘사법 파동’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게 뭐고 뭐가 발단이 됐는지 먼저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자] 네, 발단은 심각하다면 심각하고 소소하다면 소소한 일에서 시작됐는데요. 판사들 모임에 ‘국제인권법연구회’ 라는 게 있습니다.

평소 좀 진보적인 모임으로 알려졌는데요 이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얼마 전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법관독립강화의 관점에서’ 라는 긴 제목의 학술 대회를 열려고 했습니다. 제목이 길긴 한데 ‘법관 인사에 대한 대법원장의 제왕적 영향력’에 대한 대안을 좀 논의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이 학술 대회를 대법원장의 직속 조직인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해당 학술 대회를 무산, 축소시키려 외압을 행사하며 사태가 불거진 겁니다.

 

[앵커] 단순히 학술 대회 개최에 압력을 좀 행사했다고 이렇게 일이 커지진 않았을 텐데 뭐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요.

[기자] 네, 법원 행정처가 압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판사들이 보기엔 이렇게 말씀드리긴 좀 뭣하지만 ‘치사했다’는 것이 일선 판사들이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른바 ‘중복 모임’ 해소 논란인데요. 법원 예규는 1명의 법관이 2개 이상의 연구모임에 가입하는, 즉 중복 모임을 금지하고 있는데, 판사들이 보통 2~3개씩 모임에 가입해 있고 그동안 아무런 가입에 제지나 불이익도 없어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법원 행정처가 이 사문화된 조항을 근거로 ‘나중에 가입된 모임을 탈퇴 조치한다’는 공지 사항을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겁니다.

 

[앵커] 법원행정처가 중복 모임을 해소하겠다는 것과 판사들 반발 사이에 무슨 연결 고리가 있는 건가요.

[기자] 네, 문제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판사 모임 가운데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축에 속한다는 겁니다. 즉, 법원 행정처 공시사항 대로라면 회원들이 자동 탈되되 조직 자체가 크게 축소되거나 와해될 수도 있게 된 겁니다.

이에 판사들이 ‘아니, 아무리 대법원장 권한을 논하는 학술 대회라지만 판사들이 학술 대회 좀 열겠다는데 법원행정처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집단 반발로 이어진 겁니다.

 

[앵커] 그렇군요. 국제인권법연구회 입장에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후 어떻게 됐나요.

[기자] 네, 법원행정처가 중복가입 해소 공지글을 올린 지 이틀 만에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가 반박하는 글을 올립니다. 행정처가 자신들의 활동을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 수준 정도인데, 법원행정처는 닷새 뒤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유보하겠다고 일단 한 발 물러납니다.

자연스레 갈등이 봉합되나 했는데, 또 하나의 뇌관이 터집니다. 같은 날 바로 이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을 맡고 이던 이 모 판사에 대한 인사발령이 난 겁니다.

이 판사는 지난 2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제2심의관으로 발령이 났는데, 발령난 지 얼마 안 돼 다시 원 소속인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복귀하라는 조치입니다.

연구회에 대한 압력,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멤버 판사에 대한 부당 인사 의혹, 여기에 이른] 바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까지 더해지며 사태가 폭발적으로 커진 겁니다.

 

'사법개혁 저지 의혹'에 대한 법원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인복 전 대법관. /연합뉴스

[앵커] 판사 블랙리스트, 대체 무슨 문건입니까.

[기자] 네, 한마디로 문화계 블랙리스트처럼 법원행정처가 전체 법관들에 대해 이른바 성향 조사를 해서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의혹입니다.

이런저런 의혹들이 계속해서 불거지자 대법원이 이인복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착수했고 어제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앵커] 그래서 어제 발표된 보고서는 결론이 어떻게 나왔나요

[기자] 일단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 대회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법원행정처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압력 행사 사실을 일부 인정했습니다.

중복 가입 해소 논란에 대해서도 ‘부당한 압박 가한 제재조치로 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법원행정처가 사법개혁 논의를 저지했다는 판사들의 문제 제기가 실제 어느 정도는 사실로 드러난 겁니다.

조사위는 다만 이 판사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연구회 활동 축소 목적 인사발령으로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고, 판사들을 뒷조사한 비밀파일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해선 ‘존재를 추정할 정황이 없다’는 다소 모호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앵커] 판사들이 하는 말이라 역시 어렵네요. 그런데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법원행정처 컴퓨터도 조사를 안했다고 하는데, 법원 내부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이는데요, 이번 조사위 보고서에 대한 법원 안팎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기자] 네, 때문에 조사위가 행정처 책임으로 두루뭉술 판사들의 불만을 봉합하고 인사권자나 법원 고위층의 개입 여부에 대해선,이른바 윗선 차단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정치권에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판사 블랙리스트가 뭐가 다르냐며, 오히려 판사 블랙리스트야말로 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며 수사를 통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법원 노조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이번 사안을 검찰에 고발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습니다.

실제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이 물적 증거 확보를 위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앵커]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그렇고 이번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도 그렇고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막는 사태가 재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LAW 인사이드 이철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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