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첫 공판
"검찰이 총체적 위법수사"... 작심 검찰 비판

[법률방송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하고 재판 기록 등을 무단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오늘(27일) 열린 첫 공판에서 “정의를 행한다고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동원해선 안 된다”고 검찰을 작심하고 저격했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해 발언 기회를 얻은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종이에 적어온 자신의 주장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먼저 "언론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혹은 사법농단 사건이라 표현하는 이번 일은 사법부 역사에 유례없는 사건"이라며 "따라서 실제로 누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만이 아니라, 수사 절차가 과연 적법하고 공정했는지도 낱낱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습니다.

말문을 연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사상 초유의 전·현직 법관에 대한 수사라 검찰 역시 고충이 있었을 테지만, 정의를 행한다는 명분으로 정의롭지 않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검찰의 총체적 위법수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검찰을 정조준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그러면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비공개 면담 조사, 별건 압수수색, 언론을 활용한 대대적 피의사실 공표, 표적수사, 과잉수사, 별건수사, 영장주의 위반" 등 검찰의 위법수사 사례와 부조리하고 잘못된 관행들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지적했습니다.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나아가 "저는 감히 우리의 수사·재판이 국가의 품격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디딤돌이 되는 판례 하나를 남기는 것이 제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자못 비장하게 ‘운명’까지 얘기하며 검찰과의 일전불사를 선언했습니다.

"판사들이 그간 무덤덤하다가 자기 일이 되니 기본 인권이나 절차적 권리를 따진다는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 겪어보니 수사 실상이 이런지 몰랐다는 것을 깨우쳤다"는 것이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의 뒤늦은 ‘깨달음’이자 검찰을 향한 날 선 선전포고입니다.

그리고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이 ‘깨달은’ 건 ‘검찰 수사 실상’ 만이 아니었습니다.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때로는 삶이 죽음보다 구차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수사 단계에서 저는 이미 언론에 중대 범죄자로 찍혀 만신창이가 됐고 모든 삶이 불가역적인 타격을 받았지만,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만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 심리를 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10일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유 전 수석은 직접 참석하는 대신 변호인을 통해 재판부에 제청한 형사소송법 조항들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 이유를 소상히 밝혔습니다.

해당 조항은 ‘검사는 수사에 필요할 때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는 형소법 제200조와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도록 한 형소법 제312조입니다.

형소법 제200조에 대해선 “피의자 신문의 횟수나 시간을 제한하지 않고 검찰의 출석요구권이 아무런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규정 된 것은 과잉금지원칙 등 위반으로 위헌이다”는 게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 측의 주장입니다.

검찰 신문조서 증거능력 인정에 대해선 "수십년간 당연하다는 듯이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했지만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도 검사의 조서로 재판하는 경우는 없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습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진료 의료인’이 연루된 재판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등 사법행정권 남용에 가담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며 대법원 재판 문건 등을 다량 들고 나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증거인멸 혐의 등을 받고 있습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수석연구관이 받는 혐의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보인 모습들에 대해선 자세히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공판준비기일이나 오늘 첫 정식재판에서 밝힌 검찰의 일부 고질적인 잘못된 수사 관행 등을 지적한 발언들만 놓고 보면 금과옥조,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만 오늘 한 말을 ‘그때’,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나 수석재판연구관일 때 했다면, 검찰 신문조서에 의지하는 수사와 재판 관행에 대한 준엄한 반성과 질타의 목소리를 잘 나가던 판사 시절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짙은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역지사지. 입장이, 딛고 서 있는 곳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는 건 당연하고 인지상정인데 뭔가 씁쓸하고 헛헛합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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