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저장소 위치 인지 여부 등에 대한 신문·답변 녹취록과 신문조서 단독입수

[법률방송뉴스] 검경 수사권 조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 관련 검찰과 경찰의 갈등에 가려 주목을 덜 받긴 하지만 아주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검찰 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인데요.

검찰이나 경찰 같은 수사기관에서 신문조서를 작성하는 것을 두고 흔히 조서를 '꾸민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어떻게 봐야할까요. 

수사기관이 신문조서를 어떻게 꾸미는지 그 일단을 보여주는 녹취록과 신문조서 일부를 법률방송이 단독 입수했습니다. '심층 리포트'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원유 손실액과 시설 수리비 등을 합쳐 117억원의 물적 피해를 낸 지난해 10월 경기 고양 저유소 화재 사건.

화재는 한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가 날린 풍등이 발단이 됐습니다.

관련해서 이주 노동자 A씨에 대한 경찰의 피의자 신문 녹취록 가운데 일부입니다.

경찰이 "숲 아래에 뭐가 있어요?"라고 묻자 A씨의 통역사는 "밑에 내려갈 때까지 숲이 있습니다"라고 A씨 답변을 전달합니다.

이에 경찰은 "그러니까 숲 그 밑에 뭐가 있어요?"라고 재차 묻고 A씨 통역사는 "정확히는 모르겠다"라는 답변을 전달합니다.

경찰은 그러자 다시 "숲 아래 있는 시설 그 회사 있죠, 회사?"라고 저유소를 지칭해 신문하지만 통역사는 역시 "모릅니다"라는 답변을 반복해 전달합니다.

그러자 경찰은 다시 "저장 탱크 있는 그 회사?"라고 피의자가 답하지도 않은 '저장 탱크 있는 그 회사'라고 묻고 피의자는 직접 "우리 회사보다 멀리 있죠"라고 답합니다.

저유소와 풍등을 날린 곳과는 거리가 있어서 저유소에 불이 날지 몰랐다는 취지의 답변으로 풀이됩니다.

그렇지만 경찰은 몇 차례 신문과 답변이 더 오간 끝에 언성을 높이며 "숲 아래는 석유 저장소 있죠?"라고 묻고 통역사는 이에 결국 "예"라는 답변을 전달합니다.

해당 신문 과정이 기록된 경찰 피의자 신문조서 일부입니다.

5분여간의 신문과 답변 과정이 대부분 생략되고 "숲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가요, 석유 저장소가 있지요"라는 질문과 "예"라는 답변, 단 두 줄로 적혀 있습니다.

애초 '뭐가 있는지 모른다', '저유소는 거리가 멀다'는 취지의 답변은 모두 사라지고 '석유 저장소가 있는지 아는 상태에서 풍등을 날렸다'로 밖에는 해석이 안 되게 조서가 작성된 겁니다.

[최정규 변호사 / 원곡 법률사무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조서 자체가 사실은 다소 정리하는 정도 수준이 아니라 정말 이렇게 꾸며졌다라고 볼 정도로 많이 축소되고 많이 와전된 그런 내용을 저희가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이런 신문조서를 바탕으로 결국 A씨를 단순 실화가 아닌 '저유소에 불이 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이른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A씨에 대해 중실화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습니다.

[곽지영 형사 전문 변호사 / 법무법인 예율]
"고의의 차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처벌도 굉장히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이런 식의 조서 꾸미기가 만연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인데, 더 큰 논란과 문제는 검찰 신문조서입니다.

경찰 신문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조서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면 증거로 쓰일 수 없지만 검찰 신문조서는 피고인이 부인해도 검찰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작성됐음을 입증하면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조사하면 다 나와' 식의 강압수사나 '먼지떨이' 식의 별건수사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국회 사개특위가 검찰 신문조서 증거능력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쪽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지금 제도는 '피의자가 얘기한 것을 누가 적느냐, 조서로 작성하느냐'에 따라서 증거능력이 달라지는 것이거든요. 다시 말하자면 경찰관이 그것을 받아 적으면 증거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검사가 받아 적으면 증거능력이 굉장히 강력하게 인정이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없는 제도이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고쳐야죠."

실제 수사는 경찰이 기소와 공판은 검찰이 담당하는 미국의 경우엔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라는 건 아예 없고 신문조서가 자동적으로 증거로 채택되지도 않는다는 게 미국 변호사의 설명입니다.

[김익태 미국 변호사 / 법무법인 도담]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도 자동적으로 증거로 채택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공판 중에 이뤄진 증언으로만 판단한다는 공판 중심주의 원칙 때문입니다."

반면 검찰은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면 재판이 늘어지고 진술에 크게 의존하는 뇌물 같은 지능형 비리 범죄 수사가 크게 어려워진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합니다.

이와 관련 대검 관계자는 법률방송과의 통화에서 "다른 보완책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여러 의견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어떤 의견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사개특위가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운 가운데 검찰 신문조서 증거능력 제한이 실제 이뤄질지, 이뤄진다면 수사기관의 수사 관행과 법원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벌써부터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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