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 뉴스본부 기자

지난 13일 오후 1시 30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최초 제보자 고영태(41)씨에 대한 체포적부심사가 열린 서울중앙지법 서관 일대는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이틀 전 고씨가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체포됐다는 소식과 함께 SNS 등을 통해 퍼진, 부서진 그의 집 현관문 사진은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보여줬다. 검찰은 "고씨가 체포영장에 응하지 않고 완강히 저항했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 소방당국의 도움을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밝혔다. 고씨는 변호인을 통해 "검찰과 소환 일정을 조율하는 중에 체포한 것은 부당하다"며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했다.

법원을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의견들이 오갔다. 한 기자는 "이제 고영태 통해 빼먹을 것은 다 빼먹었잖아"라며 '검찰이 배신'한 거'라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사실 고영태도 (최순실과) 같이 해먹은게 있으니까..."라며 체포된 건 당연하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렇게 검찰과 고씨 양측 다 명분은 있었다. 검찰은 "고씨가 연락이 두절된 채 선임계도 내지 않은 변호인을 통해 연락을 했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고씨 측은 "연락 끊긴 적 없고 충분히 소통 중이었다"라고 맞섰다.

어떻든 취재진에게 관건은 법원에 나오는 고씨가 '어디를 통해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였다. 특히 그의 모습을 놓치면 안되는 카메라 기자들의 '뻗치기'는 이어졌고, 결국 그들은 '봉쇄 작전'에 나섰다. 예상 출입로에 인력을 분산 배치해 고씨를 놓치지 말자는 것이었다. 지하와 4층, 서관 후문 출입구로 나뉜 기자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여기저기 '카톡' 소리가 난무했고, "거기로 왔냐?" "여기 안오는데" 하는 대화만 계속 들려왔다.

1시 50분쯤일까, 4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고영태 저기 밖에서 내리고 기자들 뛰어가던데...". 고맙다는 말만 짧게 남기고 뛰었다. 마이크를 들고 뛰는 기자에게 시민들은 계속 말했다. "고영태 저기 들어갔어" "지금 가면 늦을텐데..." "다른 기자들이 찍고 있던데..."

하지만 이미 상황 종료였다. 허탈한 기분으로 동료 기자가 찍은 영상을 보며 확인한 고씨는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취재진의 카메라를 잠시 응시하던 그의 눈빛은 뭔가 할 말이 많은 듯하기도 했다.

아쉬운 생각을 안고 돌아서는데 문득 '고영태란 이름 석 자가 유명해지긴 유명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이 진을 치고 그를 쫓는 것을 보면, 걸그룹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의든 타의든 그는 유명인이 된 것이다. 과거 최순실의 최측근이었다가, 최씨와 갈라선 뒤 국정농단 의혹을 최초로 폭로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배신자'와 '내부고발자', '국정농단 폭로'와 '사기극'의 어느 사이에 그는 위치한다.

어떻든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그가, 한참의 시간이 지나 스스로의 행적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 것인가.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는 엄청난 사태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자로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어느 정도의 시련과 고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문득 '인간 고영태'에 대해 일말의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만약 그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지금 한국은 또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을까.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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