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집배원, 정규직 집배원에게 우편물 받아 배달
"집배원 업무 하청... IMF 사태 이후 궁여지책 등장”
"근로자 아닌 개인사업자... 임금 차별, 신분 불안"
대법원 "우체국 지시 받아 업무수행... 근로자 맞다"

[법률방송뉴스] 며칠 전 저희 법률방송에서 21세기판 ‘공노비’ 취급을 받는 별정집배원에 대한 구조화된 차별 문제에 대해서 보도해 드렸는데요.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별정집배원뿐 아니라 ‘재택집배원’이라는 제도까지 있다고 하는데, 이 재택집배원들은 그동안 아예 근로자로도 인정을 못 받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왔다고 합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기인지 ‘심층 리포트’ 김태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재택집배원은 우체국으로 출근하지 않고 우체국 집배원이 가져다주는 우편을 받아 각 가정에 직접 배달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집배원을 말합니다.

공사 하도급을 주듯 일종의 우편업무 하청을 주는 겁니다.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구조조정과 감원의 칼바람을 겪으며 배달해야 할 우편량은 정해져 있지만 집배원 수는 한정돼 있고, 이런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바로 재택집배원이었다는 게 우정사업본부 설명입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
“저희가 이제 예전에 통상우편물이 많이 증가하던 시기에 정부가 IMF로 인해서 저희가 집배원들을 물량 늘어나는 것에 맞게 신속하게 충원이 안 됐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일종의 특수고용직으로, 하는 일은 정규직 집배원과 다를 게 없지만 임금과 근무조건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하다는 것이 재택집배원들의 하소연입니다.

[유아 / 전국집배원노조 재택집배원 지회장]
“저임금이죠. 제가 2007년도에 입사했을 때가 월급이 68만원이었거든요. 근데 그로부터 13년차 들어갔는데 제 월급이 130만원이에요. 왜냐면 저희는 특수고용직 이라는 이름 때문에...”

열악한 처우도 처우지만 근로자가 아닌 재택집배원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있기 때문에 언제든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해고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불안함입니다.

이렇게 사실상의 해고를 당해도 퇴직금은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저런 차별과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꾹 참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허소연 전국집배원노조 교육선전국장]
“비용절감을 우선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사실은 개선을 안 하면 사용자가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그러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보니까 그냥 뭐...”

이에 재택집배원들은 2014년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자신들을 근로자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신선아 변호사 / 민주노총 법률원]
“근데 이와 같이 우체국으로의 출퇴근을 하지 않도록 한 건 해당업무 특성 때문에 우체국의 비용절감 차원에서 고안된 방법일 뿐이지. 이런 사정이 근로자성을 부정할 수 있는 사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법률원은 재판에서 이들 재택집배원들이 각 우체국으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해온 사실을 집중 부각했습니다.

집배원임을 나타낼 수 있는 정해진 복장을 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서 정해진 근무를 한 만큼 개인사업자가 아닌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요지로 주장을 펼쳤습니다.  

1·2심은 민주노총 법률원 주장을 받아들여 모두 원고 승소로 판결했고 대법원도 어제 최종적으로 재택집배원들 손을 들어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자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재택집배원들은 우편배달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집배원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하였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입니다.

[신선아 변호사 / 민주노총 법률원]
“국가기관이 무려 20여년간 재택집배원들을 개인사업자로 위장하고 노동법을 부당하게 잠탈하고 그 사용자책임을 회피해 왔던 것인데 이번 판결이 이러한 점을 확인하고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비용 절감이나 경영성과를 이유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해 온 일부 국가 공공기관의 행태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는 평가입니다. 제도 개선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김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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