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실장, 조윤선 전 장관 등 재판에 증인 출석
"문체부 직원들 굉장히 힘들어해... 문화예술인들에 죄송"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에 관여한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은 BH(청와대) 지시사항이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공무원 체계상 BH 지시사항이 가장 강하기 때문에 업무를 거절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12일 열린 블랙리스트 관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에 대한 2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오진숙 전 문체부 예술정책과 서기관은 “지시사항을 집행하는 (당시) 사무관으로 특정 문화예술인이나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지적했다”고 진술했다.

오 전 서기관은 “하지만 BH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기본적으로 이행해야 되기 때문에 업무 자체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술정책과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관리하는 부서다. 오 전 서기관은 2013년 9월 과장 및 동료 사무관들이 청와대 지시사항이라며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 일탈 행태 시정 필요’라는 문건을 전달받았고, 한 달 뒤에도 청와대로부터 ‘문화공연 이념문제 보고서 요약 문건’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청와대로부터 연이어 이같은 문건이 전달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는 특검 측 질문에 오 전 서기관은 “전반적으로 좌편향, 진보 성향에 대해 가능한 지원을 배제했으면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오 전 서기관은 이날 공판에서 특검 측이 공개한 블랙리스트 관련 15건 이상의 문건에 대해 거의 모든 문건을 직접 작성했으며 청와대가 문서를 모두 보고받았다고 증언했다. 

오 전 서기관은 “문화예술 분야에 10여년 이상 종사하면서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지원배제 명단을 작성하는 일이 BH와 연결된 일이라 저항이라는 건 생각조차 못 해봤다”며 “그 일을 수행한 직원들도 굉장히 힘들었다. 담당 사무관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오 전 서기관은 “특검에서 지원배제 지시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했다고 진술했는데, 누구에게 그 사실을 들었냐”는 김 전 실장 변호인의 질문에 “국장에게 주로 지시를 받으면서 상황을 여쭤보니 ‘청와대 제일 높으신 분’이라고 얘기하면서 김 전 실장 얘기를 들었다”고 답변했다.

오 전 서기관은 또 "김 전 실장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면서도 "김 전 실장 부임 이후 좌편향, 이념 편향이라는 표현을 상관으로부터 많이 들었다”고 답했다.  

“지원배제 명단이 실행되도록 협박이나 강요를 당한 사실은 없지 않느냐”는 김 전 실장 변호인의 질문에 오 전 서기관은 “BH가 지시해 예전에 없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협박은 모르겠지만 강요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의 변호인은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오 전 서기관의 진술이 조윤선 전 장관 소속이던 정무수석실이 아닌 교문수석실에 대한 것이라며 조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실행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 전 서기관은 “2015년 4월 59명의 지원배제 명단이 적힌 문건을 받았는데 그 문건이 ‘정무 리스트’라고 확실히 얘기를 들었다”고 반박했다. 오 전 서기관은 “그쯤 정무수석실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고, 그 문건은 정무에서 온 거라고 전달받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오 전 서기관이 ‘정무 리스트’라는 명단을 전달받은 2015년 4월 당시 정무수석은 조 전 장관이었다. 조 전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정무수석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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