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소방관 "높은 소음에 지속적 노출... 과로와 스트레스로 난청"
"공무상 질병 아냐"... 공무원연금공단, 공무상 요양비 요청 거부
항소심 "평소 근무환경 소음, 기차 지나가는 철로변 수준... 직업병"
20년 이상 근무 소방관 집단 소음성 난청 호소... 대책 마련 필요

[법률방송뉴스] 33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한 공무원이 난청 증세를 앓고 있다면 이는 공무상 질병에 해당할까요, 화재를 진압하다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니니 공무상 질병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판결로 보는 세상’ 입니다.

전직 소방관 63살 강모씨라고 하는데요. 1982년 12월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강씨는 2016년 6월 30일까지 제주도 내 일선 소방서에서 소방대원과 소방팀장 등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러던 2010년 12월 귀가 먹먹하고 이상해 병원을 찾은 강씨는 양쪽 귀 모두 심한 ‘하강형 난청’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6개월 뒤인 2011년 6월 재검사에서도 '소음성 난청이 의심되고 장애진단 시 5급 정도가 예상된다'는 병원 진단을 받았습니다.

퇴직 후에 강씨는 "약 33년간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높은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됐고 직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난청 증상을 앓고 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비 지급을 요청했으나 공단은 이를 거부했고 강씨는 소송을 냈습니다.

1심은 강씨의 소방관 근무와 난청 사이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판결에 불복해 강씨는 항소했고 항소심 판결이 오늘 나왔는데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의학적 소견 등을 고려하면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는 동안 소음과 스트레스에 노출돼 난청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법원이 강씨의 일상적인 근무 환경 소음을 측정해보니 평균 90 가중 데시벨을 초과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심한 경우 115 가중 데시벨을 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하철 안의 소음도나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 소음도가 80 데시벨 정도, 기차가 지나갈 때 철로변 소음도가 100 데시벨 정도라고 하니 수십년간 상시적으로 대형 트럭이나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변 정도의 소음에 노출됐었다는 얘기입니다.

115 데시벨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심한 경우 비행기가 이착륙 하는 정도의 소음에도 종종 노출된 겁니다.

거기다 강씨는 난청 판정을 받은 2007~2015년 사이 매년 최소 400시간 이상의 시간외 근무와 100시간 이상의 야간근무 등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엄청난 소음에 살인적인 근무. 이 정도면 난청이 없는 게 거꾸로 이상할 정도입니다.

실제 재판에선 평균 20년 이상 근무한 제주지역 소방관 가운데 상당수인 43명의 소방관이 소음성 난청을 호소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법정에서 제시됐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원고는 소방공무원으로 임용 전 청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청력에 영향을 미칠만한 다른 신체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마디로 강씨의 난청은 수십년 소방관 생활을 하며 얻은 직업병이라는 얘기입니다.

기금을 아껴야 하는 공무원연금공단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애초 이게 지급 거부 사안이었나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무엇보다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전수 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복을 입은 이들에 대한 보호와 관리는 국가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 책무입니다. ‘판결로 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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