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오너 주총에서 경영권 박탈 첫 사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 주주 촛불혁명"

[법률방송뉴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오늘(27일) 열린 대한항공 주주 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에 실패하며 대한항공 CEO 자리를 내놓게 됐습니다.

재벌그룹 총수가 주총에서 경영권을 잃고 쫓겨난 건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전례가 없는, 말 그대로 ‘왕의 목을 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앵커 브리핑’ 관련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다치 마사카쓰라는 일본 작가가 쓴 ‘왕의 목을 친 남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엔 ‘프랑스 혁명의 두 얼굴, 사형집행인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을 앙시앙 레짐, 구체제 타파라는 혁명과 반혁명의 관점이 아닌 혁명 와중에 무수히 죽어 나간 사람들을 지켜본 샤를 앙리 상송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형집행인’의 시선으로 프랑스혁명을 바라본 책입니다.

관련해서 ‘프랑스 혁명’ 하면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외과의사 기요틴이 발명한 단두대 기요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의 머리를 베어 죽이는 참수형을 끔찍한 처형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프랑스에선 달랐다고 합니다.

프랑스 귀족들은 교수형을 수치스러운 처형으로 간주해 교수형보다는 참수형을 선호했고 실제 사형 판결 시 귀족은 참수형, 평민은 교수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분에 따라 처형 방법이 달랐던 겁니다. 조선의 경우도 참수형을 선호했던 프랑스와 정반대의 경우이긴 하지만 신분에 따라 처형 방법이 달랐습니다.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始也). 부모님이 주신 몸을 훼손하지 않는 게 효도의 시작이라는 유교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 당상관을 지낸 양반들은 대역죄가 아닌 이상 참수하지 않고 사약을 내리는 식으로 시신을 온전히 보존해 준 겁니다.

이런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처형 방식에 대해 국민의회 의원이기도 했던 기요틴은 프랑스 혁명 발발 직후인 1789년 10월 10일 국민의회에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똑같은 사형을 당하면서 신분에 따라 처형 방법이 다른 것은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내용입니다.

기요틴은 그러면서 ‘인도주의’에 입각한 처형을 제안합니다. 바로, 칼질에 실패해 두 번 세 번 목을 칠 필요 없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칼에 목을 자르는 단두대 '기요틴'입니다.

그리고 1793년 11월 13일 파리혁명광장에서 기요틴의 칼날 아래 루이 16세가, 그리고 비운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적과 내통한 혁명정부에 대한 반역 혐의를 받았던 루이 16세에 대해 25살 자코뱅당 최연소 의원이었던 생 쥐스트는 “왕정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인간은 그 범죄에 대항해 떨쳐 일어나 무장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흔히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 같은 어떤 제국의 정점에 있는 존재를 끌어내린 일을 두고 ‘왕의 목을 쳐 본 기억’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촛불혁명'이라는 넉자로 대표되는 그런 왕의 목을 쳐 본 기억이라면 오늘 대한항공 주주 총회 조양호 회장에 대한 경영권 박탈은 우기 경제와 기업 역사에 왕의 목을 친 첫 기억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 거수기 정도로 간주해 왔던 재벌 기업 주총에서 재벌 오너가 경영권을 상실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 주총이 종료된 뒤 주총장 전면 화면에 뜬 ‘감사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라는 인사말이 조양호 회장 퇴임과 맞물려 묘한 느낌을 주게 합니다.

땅콩회항, 물벼락 갑질, 공사장 동영상, 가사 도우미 밀수 등등. 온갖 해괴하고도 얼굴 뜨거워지는 신조어들을 만들어내며 재벌 갑질 논란과 지탄을 자초한 한진 사주 일가.

정말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다른 절대 권력들은 어떨지도 궁금합니다.

아무튼 오늘로 대한민국은 재벌 오너라는 왕의 목을 쳐 본 기억을 갖게 되었고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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