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부재리 원칙을 다룬 법의 아이러니에 대해 그린 드라마
'이태원 살인사건' 진범 재판에서도 거론됐으나 적용 안돼

[법률방송뉴스] 대중의 관심이 높은 사건에 대한 법률적 해석, 법적 절차나 처리 과정 등 궁금한 점을 알려드립니다. 반드시 유명 인사(스타star: '별별')가 개입된 사건이 아니어도 됩니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소하더라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그러나 법을 알면 더 명쾌해지고 재미있어지며 피해도 줄일 수 있는 '별의별' 사안들을 다룹니다. /편집자 주

tvN '자백' 방송화면
tvN '자백' 방송화면

양애란 살인사건의 피의자 한종구(류경수 분)의 무죄를 받아낸 변호사 최도현(준호 분)은 5년 뒤 똑같은 수법의 김선희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한종구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자 또 한 번 그의 변호를 맡게 된다.

과거 양애란 살인사건의 수사 책임자였던 형사 기춘호(유재명 분)는 5년 전 사건의 진범을 여전히 한종구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김선희를 죽인 사람은 한종구가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다며 그의 변호사인 최도현을 찾아와 "내가 증언을 하면 한종구는 풀려날 수도 있다"며 대신 한종구에게 5년 전 살인죄를 물을 방법을 찾아낼 것을 제안한다.

사건을 추적하던 최도현은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과 김선희 살인사건이 수법은 동일하지만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고, 두 사건의 범인이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하지만 김선희를 한종구가 죽이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자 결국 법정에서 한종구에게 5년 전 양애란을 죽였다고 자백하도록 유도한다.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의 진범이 한종구이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김선희 사건의 진범은 한종구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작용한 것이다.

최도현은 재판 전에 이 같은 사실을 한종구에게 말하지만, 한종구는 지금 당장 무죄를 받기 위해 과거 범죄를 자백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화를 낸다.

이 때 최도현은 판결이 확정되면 동일 사건에 대해서는 재차 기소·심리·판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형사상의 원칙인 일사부재리 원칙(一事不再理 原則)을 한종구에게 설명한다.

tvN '자백' 방송화면
tvN '자백' 방송화면

이는 지난 23일 첫방송된 tvN 드라마 '자백'의 일부 내용이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를 '일사부재리라는 법의 테두리에 가려진 진실을 좇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직은 2회분 밖에 방송이 되지 않아 전체 스토리라인을 추측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법이 가진 모순을 다루려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며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송명호 변호사(법무법인 감사합니다)는 "'면소(免訴) 판결' 사유를 나열한 형사소송법 제 326조를 형사상 일사부재리 원칙의 근거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에서 일단 판결이 확정되면 같은 사건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데 이에 위배되면 면소판결을 받게 된다.

면소판결이란 확정판결이 있거나, 사면이 있거나, 공소 시효가 완성됐거나 법죄 후 법령 개폐로 형이 폐지된 경우에 공소가 부적당하다고 봐 사건의 실체에 대해 직접적인 판단 없이 소송 절차를 종결시키는 것으로, 무죄 판결과 대등하게 취급된다.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고 피고인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인정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가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것이므로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하지 않는 것이다.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돼 면소판결을 할 수 있는지 여부는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가지고 판단하게 된다.

이에 대해선 여러 견해가 제시되고 있지만 판례(대법원 1994. 3. 22. 선고 93도2080 전원합의체 판결)는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한지와 함께 피해법익이나 죄질 등 규범적 요소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따라서 일사부재리 원칙은 완전히 동일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한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판례는 장물취득죄와 강도상해죄 사이에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장물취득죄로 처벌받은 뒤 다시 강도상해죄로 처벌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지난 1997년 서울 이태원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벌어진 이른바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된 미국인 아더 존 패터슨의 재판이 18년 만인 지난 2015년 다시 시작됐을 때 패터슨 측이 일사부재리 원칙 위배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 당시 패터슨이 유죄를 확정받은 사건은 증거인멸 부분이었기 때문에 살인과는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본 것이다.

패스트푸드 가게 화장실에서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살)씨가 흉기에 찔려 숨진 '이태원 살인사건'은 당시 패터슨과 에드워드 건 리 2명이 용의자로 붙잡혔다. 검찰은 서로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둘 중 한 명의 진술을 사실이라고 보고 리만 살인범으로 단독 기소했고, 패터슨은 흉기소지·증거인멸 혐의로 복역하다 1998년 사면된 후 검찰이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같은해 8월 미국으로 도주했다.

이후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고, 진범으로 지목된 패터슨이 도주 16년 만에 국내로 송환돼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0년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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