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 민사소송 소장·판결문 가해자에 송달
피해자 이름·주소 등 주요 인적사항 그대로 드러나
인적사항 노출 막는 법 개정안 국회에 여전히 계류

[법률방송뉴스]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성폭행 가해자에게 내 이름과 주소가 배달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런 일이 있겠어 싶겠지만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게 현재 우리나라 법체계입니다.

이런 황당한 사태를 막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습니다. ‘잠자는 법안을 깨워라!’ 김태현 기자가 법안 취지와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지난해 10월 23일 '법률방송 LAW 투데이'에서 방송한 리포트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성폭력 피해자의 집 주소와 주민번호 등을 가해자에게 보내는 법원을 막아주세요’라는 게시물입니다.

해당 국민청원은 26만명에 육박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청와대가 지난해 11월, 답변에 나섰지만 별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했습니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 / 지난해 11월 15일]
“형사소송과 달리 민사소송은 개인의 권리에 관한 다툼을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 당사자의 특정이 필요합니다. 필요시 강제 집행이 가능하도록 당사자의 성명, 주소 등 인적사항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은 유죄가 나면 국가가 피고인에 대해 형벌을 집행하면 되지만 민사소송의 경우엔 내가 누구를 특정해 어떤 의무와 권리가 발생하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이름과 주소 등 신원이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령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에 손해배상 소송을 낼 경우 피해자 인적사항이 가해자에게 전달되는 황당하고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유근성 변호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그러니까 아예 안 쓸 수는 사실 없어요. 동명이인도 있을 수 있고 이러니까. 인적사항이 특정이 안 되면 집행이 안 될 수가 있어서 주소가 들어가긴 들어가야 해요.”

이런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월 자유한국당 윤상직 의원이 범죄 피해자의 경우 인적사항을 가릴 수 있도록 하는 민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습니다.

법안 제안 이유를 보면 “성폭행 등의 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그 피해에 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집주소,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이 담긴 판결서가 송달되고 있어 보복범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음.” 

"이 때문에 피해자는 손해배상청구소송 자체를 포기하거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를 하더라도 가해자의 출소를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경우가 많음“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윤상직 의원실 보좌관의 설명입니다.

[제방훈 보좌관 /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실]
“이게 21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당시에 매니저에게 회식자리에서 성폭행을 당했는데 근데 판결문을 보니까 진짜 놀라게 된 거죠. 자신의 집주소, 주민등록번호, 개인정보가 다 적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가해자가) 출소를 하는 2019년 8월에 '이제 내가 좀 위험해질 수도 있다'라고 생각해서 이분이 개명도 하시고 유서도 미리 써 놓고...”   

이에 따라 법안은 “법원은 범죄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피해에 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의 경우에는 판결서 정본에 기재된 원고의 성명과 주소 등 원고의 신원을 알 수 있는 사항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가리고 송달하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피해자의 신원 노출로 인한 보복범죄를 예방하려는 것임”이라고 법안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제방훈 보좌관 /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실]
“'추가적인 보복 범죄를 시급히 방지해야 된다'라는 것에 제일 큰, 그게 중요하게 생각해서 고려된 입법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해 1월에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발의로 비슷한 취지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1년 2개월이 지나도록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묶여 계류 중입니다.

자신의 인적사항이 공개되는지 모르고 성폭행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가 보복 범죄 두려움에 유서까지 써놨다는 피해자가 있습니다.

제2의 피해를 막고 가해자에 대한 범죄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위해 관련 법안 처리가 시급해 보입니다. 법률방송 김태현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