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정서 '셀프변론'
검사 웃음에 정색하고 "검사님 웃지 마세요" 지적
재판장 "그런 건 재판장이 지적할 사안... 삼가달라"
검찰, 주 4회 집중심리 요구... 임종헌, 강력 반발
임종헌 "구치소에 쭈그려 앉아 기록 보는데 한계"

[법률방송뉴스]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여자는 남자 잘 만나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데 원래는 입구가 좁은 뒤웅박 속에 갇힌 팔자라는 뜻으로 일단 신세를 망치면 거기서 헤어 나오기가 몹시 어려움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이 자신의 재판에서 셀프 변론을 하며 자신의 발언에 웃음을 보인 검사를 향해 “검사님 웃지마세요”라고 한 말이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앵커 브리핑’, 격세지감(隔世之感) 뒤웅박 팔자 얘기해 보겠습니다.

어제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 남용 등 혐의 2회 공판에 들어가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 피고인의 모습입니다.

임 전 차장은 흡사 신주나 영정 사진을 들 듯 서류뭉치를 받쳐 들고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맨 앞의 서류는 자세히 보면 ‘보고문’이라고 써 있습니다. 법원행정처 차장 시절 작성했던 보고문으로 추정됩니다.

임 전 차장은 법정에서 본인이 직접 나서 주요 쟁점에 대한 변론을 펼쳤습니다.

먼저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 예산 3억 5천만원을 현금화해 대법원장 격려금으로 전용했다는 혐의에 대해선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항변했습니다. 

"공보관실이라는 기구나 조직이 편제돼 있지 않아도 실질적 의미에서 법원장과 수석부장판사, 공보판사를 중심으로 공보·홍보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대외활동에 필요한 경비를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으로 편성하는 건 각 부처의 상황적 예산편성 전략의 하나로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것"이라는 게 임 전 차장의 주장입니다.

대법원장 격려금도 넓은 의미에서 공보 활동이니 예산 전용이 아니라는 논지입니다. 

임 전 차장이 이 같은 주장을 펴자 한 검사가 헛웃음인지 비웃음이지 피식 웃었고. 이를 본 임 전 차장은 정색을 하고 “검사님 웃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피고인에게 웃지 말라는 지적을 당한 검찰은 즉각 반발하며 재판장인 윤종섭 부장판사에게 "이건 주의를 주셔야 할 것 같다"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재판장은 임 전 차장에게 "방금 검사를 향해 지적한 건 변론 내용은 아닌 것 같다"며 "그런 건 재판장이 지적할 사안이다. 앞으로 그런 발언을 삼가달라“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임 전 차장을 향해 당신은 지금 판사도 아니고 법관 선배도 아니고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 있으니 신분을 망각하지 말라는 지적입니다.

임 전 차장은 "주의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어진 심리에서 최소 주 3회 또는 주 4회 기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검찰의 집중심리 요구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은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제가 구치소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기록을 보는데 기록을 볼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다. 구치소 불도 9시면 꺼진다.”

"검찰은 임종헌 한 사람을 상대로 모든 화력을 집중하면서 ‘우리는 링 위에 올라와 있으니 피고인도 올라오라’고 하는데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읍소했습니다.

구치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웬지 처량하고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임종헌 전 차장의 이력을 다시 들쳐봤습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1984년 제26회 사시에 합격한 임 전 차장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과 기획조정실장, 차장 등 일선 법원과 행정처 요직을 이어달리며 승승장구했습니다.

대법원장까진 몰라도 내심 대법관 정도는 따논 당상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임 전 차장은 20기 가까이 연수원 기수가 차이가 날 검사한테 법정에서 ‘웃음’이나 받을 줄은, 비 서울대 출신 10기 후배 판사에 “그런 발언 마라”는 지적을 당할 줄은, 구치소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있을 거라고는 더더욱 아마 꿈에서도 생각조차 못했을 겁니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도 한참 모자란 뒤웅박 팔자, 이래저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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