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에 꺾인 반민특위, 스러진 친일청산의 꿈
드골 "민족 배반자 단죄해야 비로소 국민 단결"

[법률방송뉴스]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으로 사단을 일으켰던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어제는 “해방 후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됐던 것”이라는 발언을 해서 또 풍파가 일고 있습니다.

“친일 행위를 하고도 독립운동자 행세를 하는 가짜 유공자는 가려 내겠다“는 보훈처 2019년 업무보고를 ”과거와의 전쟁, 이 정부의 역사공정이 시작되는 거 아닌가“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앵커 브리핑’입니다.

[리포트]

로베르 브라지야크라는 2차 대전이 끝나고 부역자 처단 재판에 회부된 프랑스의 천재 작가가 있습니다.

부역자 처단 재판에 회부됐을 때 그의 나이는 36살.

부역자 처단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프랑스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그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브라지야크는 특히 “자신들을 따라 독일로 가자”는 나치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하고 종전 후 자수를 해 국민들의 호감도 있었습니다.

레지스탕스 운동과 저항 언론을 주도했던 알베르 카뮈조차 그의 천재성을 아까워 해 브라지야크 감형 탄원서를 드골 대통령에게 보냈을 정도입니다.

그의 감형 탄원서엔 이렇게 당대의 프랑스 지식인 59명이 서명을 했습니다. 다른 부역자엔 전례가 없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검사는 그러나 꿈쩍도 않고 “보통 사람의 배반보다 브라지야크와 같은 지식인의 배반이 수백배 더 나쁘다”며 반역죄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도 그대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사형선고 2주 뒤 브라지야크는 총살형이 집행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브라지야크에 대한 탄원을 단호히 기각한 드골은 후에 자신의 ‘전쟁 회고록’에서 이같은 말을 남깁니다.

"예술가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선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악에 대해서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적대 진영을 선택한 작가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들의 자극적 웅변술이 어떠한 범죄와 어떠한 벌에 해당되는지를 너무나 잘 보고 있다.“

한마디로 천재이기 때문에, 그 천재적 재주를 잘못 사용한 죄를 더욱 더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게 드골의 초지일관한 태도입니다.

프랑스가 언론인과 지식인, 비시 괴뢰정권의 관료, 검찰과 경찰, 판검사 등 이른바 사회 지도층의 나치 부역을 더욱 엄하게 처벌한 배경이자 이유입니다.

부역 신문들은 모조리 폐간을 시켰고 그 재산은 몰수했습니다. 유력 신문 중 살아남은 것은 점령 기간 파리를 떠나 신문을 정간했던 ‘르 피가로’, ‘라 크로와’, ‘르 탕’ 3개 정도입니다. 나치에 자동차를 만들어 바쳤던 르노는 몰수돼 국유화됐고 에어 프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치 협력자들의 엄청난 범죄와 악행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 전체를 전염시키는 흉악한 종양들을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는 게 드골의 소신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종양’들은 다 드러내졌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설치된 매국노 재판소를 통해 처벌된 사람들은 최대 150만명, 공식 사형 집행자 수만 1만2천여명, 비공식적으론 11만명 이상의 부역자가 사형된 걸로 추산됩니다.

그리고 나치 부역자를 찾아내 처단하는 일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친일 세력에 의해 원통하게 스러진 친일 청산의 꿈. 그 반민특위를 두고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발언.

편가르기를 통한 지지세력 결집이라는 정치적 효과는 어떨지 모르지만 착잡합니다. 국민 분열과 단결.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민족 배반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들을 단결시킬 수 있다”

드골의 말입니다. 드골 식의 ‘단결’이 필요해 보입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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