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2만 5천원' 시절, 심장병 수술비 없는 소년에 '3만원' 기탁
소년원·고아원, 우리 사회 가장 그늘진 곳 찾아 '봉사 외길 36년'
"아이들 잘 자라는 게 보람 ... 함께 해요, 봉사는 나눌수록 커져요"

[법률방송뉴스] 오늘(18일) 대법원에서는 제17회 법조봉사대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올해 영예의 대상은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만 77세의 문영수 법무사가 수상했는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라”는 게 문영수 법무사의 평소 지론이라고 합니다.

법률방송 취재진이 법조봉사대상을 수상한 문영수 법무사를 만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 '봉사하는 삶' 세상 살아가는 얘기들을 들어 봤습니다.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2018년 12월 18일 법조협회 회장 대법원장 김명수”

법조봉사대상은 법원과 법무부, 검찰, 대한변협, 대한법무사협회 등이 회원사로 있는 ‘법조협회’가 우리 사회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과 봉사를 실천해온 법조 종사자들에게 수여하는 영예로운 상입니다.

올해 그 영예의 주인공 전남 담양에 거주하는 문영수 법무사, 눈가와 입가에 깊이 패인 주름에서 세월의 흔적과 연륜이 묻어납니다. 

[문영수 법무사]
“제가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서 대단히 고맙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마 이 상은 앞으로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뜻으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영수 법무사의 선행과 봉사활동은 36년 전인 지난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법원 공무원으로 일하던 당시 월급은 지금 생각하면 턱없어 보이는 2만 5천원 정도.

그러던 어느 날 문 법무사는 신문에서 한 소년이 수술비가 없어서 심장판막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봅니다.

문 법무사는 이에 당시 한 달 월급이 훨씬 넘는 3만원을 수술비로 선뜻 내놓습니다. 

[문영수 법무사]
“제가 어릴 때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측은지심에서 한 일,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 두 달 뒤엔 심장병을 앓고 있던 이모양에게 수술비와 병원비를, 또 얼마 후엔 서울대 법대에 합격하고도 학비가 없어 입학을 포기하려던 두 명의 학생에게 입학금을 후원합니다.

[문영수 법무사]
“30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해가지고 서울대에 합격을 했어요. 그런데 학비가 없어서 진학을 못할 형편에 있었어요. 부모님이 고아였고 파출부, 그런데 현재 (그 학생이) 모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있습니다.”

법원에 근무하면서 만나게 된 이런저런 인연들. 특히 범죄를 저지르고 붙잡혀온 아이들이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문영수 법무사는 소년원으로 내친김에 고아원으로, 우리 사회 가장 그늘진 곳의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문영수 법무사]
“법원에 근무하면서 주말마다 소년원을 다녔어요. 친자식 같기도 하고 이대로 아이들을 방치하면 다음에 범죄를 일으킬 수 있지 않습니까. (범죄) 예방 차원이 되고 그런 차원에서...”

소년원을 나와도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은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데려온 아이들 중에선 문 법무사 어머니 돈까지 훔쳐 도로 달아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문영수 법무사]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시골집에서 어머니하고 같이 기도를 하면서 도와줬었죠. 그런데 주변을 보다가 절도를 해요 집에서. 어머니 호주머니까지 털어서 도망가 버렸어요. 한 때는 내가 시골 갔는데 옷을 벗어놨는데 내 호주머니에서 돈을...”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고아라고 자학하며 비뚤어지기만 하는 아이의 고향이 목포라는 말만 듣고 온 목포를 다 뒤져 부모님을 찾아 주기도 했습니다. 

[문영수 법무사]
“부모가 없었어요. 고아였어요. 부모 찾기 운동을 몇 달간 했습니다. 고향이 목포란 말만 듣고 다 뒤졌는데 못 찾았어요. 3년을 하니까 찾았어요. 찾아가지고 (지금은) 장가도 가고 또 택시 운전도 하고...”

지난 1999년 광주지법 담양군법원 사무관을 끝으로 법원을 나와 법무사 개업을 한 뒤엔  다문화 가정 정기 후원과 무료 법률상담 등 문영수 법무사의 사람 좋은 오지랖은 더 넓어졌습니다.   

그렇게 36년간 이어진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 더 어긋나고 비뚤어 질 수도 있었던 인생들, 제 자리를 찾아 잘 자라 준 것이 보람이고 흐뭇할 뿐입니다.

[문영수 법무사]
“소년원에서 공부를 가르쳤는데 그 애들이 나와 가지고 여러 가지 사업체에 취업을 하고 있대요.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저를) 알아보니까  반갑더라고요. 사회에 나와서 성공하니까 참 보람이고 그럽니다.”

돈으로 다 환산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문영수 법무사가 기부한 금액은 모두 4억 4천만원이 넘습니다.

“훗날의 약속이나 연말의 성금보다 당장 작은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찾아가 손을 내밀어 주라“는 말로 문영수 법무사는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문영수 법무사]
“좋은 일 할 적에 남모르게 하라고 그러는데 지금 그것이 아니라고 봐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같이 선행을 베풀면 어떨까요. 홍보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문영수 법무사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옛말이라며 선행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률방송 장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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