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할머니, 대법원 "미쓰비시 배상" 판결 기자회견
"돈 벌게 해주겠다, 돌려보내 주겠다... 새빨간 거짓말"
"해방 후 고국 돌아와서는 '정신대'라 손가락질 당해"
피해자들 "대법원 판결 이후 문제, 정부가 해결해야"

[법률방송뉴스] 일본 전범기업들의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인정한 오늘(29일)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은 ‘기쁘면서도 슬프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소송대리인단과 시민단체 기자회견 현장에 장한지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올해 89살이니 74년 전인 1944년이면 15살.

김성주 할머니가 일본인 교장의 말만 믿고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 공장에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간 것은 꽃다운 15살이었습니다.

징용 노동은 ‘고되다’라는 말로는 형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맞기도 많이 맞고 죽기도 많이 죽었습니다. 

[김성주 할머니(89) /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지만 다친 사람도 많습니다. 허리도 못 쓰고 가슴도 못 쓰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아마 많이 죽었을 것입니다.”

돈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간 징용길, 원하면 돌려보내주겠다는 말은 역시나 새빨간 거짓이었습니다.

[김성주 할머니(89) /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제가 ‘집에 갈랍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그래서 ‘왜 안 되냐. 당신네들이 우리 일본 데려올 때는 언제든지 보내준다고 약속을 해지 않습니까’ 저는 그랬더니 ‘요건이 안 돼서 못 간다’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손님처럼 찾아온 해방.

그러나 손가락이 잘리는 등의 장애를 안고 만신창이로 돌아온 고국은, 사람들은 김성주 할머니에게 차가웠습니다.

‘근로’든 뭐든 ‘정신대’ 라는 손가락질과 수근거림이 그것입니다.

[김성주 할머니(89) /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자식들한테 부끄러워서 그런 소리도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것이 이렇게 한이 됩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정신대 할머니다’ 그러고 손가락질 합니다. 남들 손가락질 안 받으려고 고샅(뒷골목)으로 숨어 다녔습니다.”

74년 만에 찾은, 지체된 정의, 그래도 눈물 나게 고맙고 또 고마울 뿐입니다.

[김성주 할머니(89) / 일제 근로정신대 피해자]
“저희들을 위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아낌없이 노고를 해주셔서 수고를 해주셔서 여러 가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에야 뜻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모든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다 살아서 ‘오늘’을 보진 못했습니다.

관련 소송들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세월을 못 이기고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재훈씨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박창환씨 장남]
“저한테는 오늘 기쁘기도 하고 또 무척 슬프기도 한 날입니다. 다섯 분 중에 한 분이라도 생존해계실 때 이런 결말을 봤으면 좋은데 다섯 분들이 다 작고하시고 저희 2세들이 이런 결말을 보게 되니까 참 참담하더군요.”

일본 정부는 오늘 우리 대법원 판결에 대해 “매우 유감이다.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손해배상금을 받아 갈 수 있으면 받아가 보라’는 식입니다.

[이상갑 변호사 / 피해자 측 소송대리인]
“저는 ‘이 확정 판결 이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한국 정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외교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법원 판결은 끝이 났지만 일본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하는 또 다른 싸움은 이제 막 다시 시작됐습니다.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된다는 것이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등의 말입니다.

지난달 30일 “관계부처, 민간전문가 등과 함께 정부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힌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책을 마련할지 주목됩니다.

법률방송 장한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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