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군사법원 "권력관계 이용한 성폭행" vs 고등군사법원 "적극적으로 거부 안 해"
보통군사법원 "팔을 누르는 행위, 폭행" vs 고등군사법원 "성관계 전 수반되는 동작"

[법률방송뉴스] 성소수자 여군 초급장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해군 간부 2명에 대한 고등군사법원 항소심 무죄 판결을 두고 논란이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1심 징역 10년과 8년에서 2심 전부 무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희 법률방송이 1·2심 판결문을 단독 입수했습니다.

장한지 기자의 심층 리포트입니다.

[리포트]

A 소령은 2010년 함정 근무를 하던 23세 4개월차 여군 중위를 여러 차례 강제추행·성폭행하고 이 과정에 상해까지 입힌 ‘군인 등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A 소령도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며 성관계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재판 쟁점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먼저 두 사람이 ‘상하관계’인가 ‘연인관계’인가, 즉 ‘위계나 위력이 행사됐느냐’ 하는 점입니다.

법률방송이 단독 입수한 1·2심 판결문입니다.

1심 재판부인 보통군사법원은 양형 이유를 설명하면서 “피고인이 권력관계 및 신뢰관계를 이용해 당시 초급간부였던 피해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강간 및 강제추행을 하고...”라며 위계에 의한 간음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연인관계였다는 A 소령의 주장을 모두 기각한 겁니다.

반면 항소심인 고등군사법원에선 위계나 위력 행사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일단 “연인관계로 볼 만한 객관적인 사정은 없어 보인다” 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해자가 ‘NO'라고 한 적이 없고 ‘어떤 반응을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점 등, 달리 ‘싫어한다’는 피해자의 진심을 피고인이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항소심 재판부 판결입니다.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만큼 A 소령에게 성폭행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최란 /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장]
“(피해자는) 피해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은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비트는 것 뿐, ‘싫다. 하지 마라’ 말을 한다는 것은 군조직의 일원인 자신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는 피해자에게 고등군사법원은...”

또 다른 주요 쟁점은 성관계 당시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느냐 여부입니다.

피해 여군은 검찰 조사에서 “피고인이 팔로 체중을 실으며 손목을 눌러”, “몸으로 올라가 눌러 반항하지 못하게 한 후”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 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 “피해자 진술에 의하면 폭행이 인정된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압박이 있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이 판단도 항소심에선 180도 뒤집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몸을 누르거나 팔을 잡는 행위는 성관계를 시작하면서 수반되는 일반적인 동작”이라는 것이 항소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팔목을 잡거나 몸을 누른 행위 등을 폭행이나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김은경 / 젊은여군포럼 대표]
“이들은 ‘나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으로 교육받은 지 얼마 안 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친구들입니다. 상관의 말과 행동이 무조건 옳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 생각하고 무조건 충성해야 된다는 게 몸에 밴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것을 피해갈 수가 있겠습니까.”

강간 및 강제추행으로 인한 상해 여부도 재판에선 쟁점이 됐습니다. 

1심 재판부는 “상해를 입었다”고 판결했습니다.

“전문의는 피해자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병명의 진단서를 발급했다. 소위 ‘도가니 사건’이나 ‘테니스코치 사건’에서도 강간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는 것이 1심 재판부 판단입니다.

2심 재판부는 “폭행 또는 협박, 강간 또는 강제추행의 범의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나머지 점에 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가 없다”며 판단 자체를 유보했습니다.

강간이 성립하지 않으니 강간으로 인한 상해는 성립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입니다.   

그밖에도 성소수자인 자신에게 “남자를 가르쳐 주겠다”며 성폭행했다는 등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어렵다”고 ‘사실’로 판단했습니다.

반면 2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다는 부분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1심과 판단을 달리했습니다. 

징역 10년과 무죄, 징역 8년과 무죄. 극과 극으로 운명이 갈린 ‘여군 성폭행’ 혐의 가해자들은 이제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성 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대법원이 사건을 확정할지, 아니면 파기환송할지 관심입니다.

법률방송 장한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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