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우 법률사무소 다오 변호사
안진우 법률사무소 다오 변호사

최근 '사법농단'으로 불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과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대법원의 비자금 유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한 설문조사기관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은 사법부 재판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판사와 AI(인공지능) 판사 중 누구에게 재판을 받겠는가'라는 질문에, 함께 재판을 받는 상대편이 엄청난 부자이거나 권력층이라면 공정한 판결을 받기 위해 AI 판사를 선택할 것 같다는 답변이 들리기도 한다.

현재 법률시장도 AI와 빅데이터의 영향권에 들어왔다. AI 기술의 확산과 사법 불신 등으로 빅데이터와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인간 판사를 대체할 수 있는 AI가 판결의 공정성 확보에 도움을 주고 과중한 업무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미 판례 어드바이스가 가능한 AI 변호사는 실용화되고 있다. 2016년 IMB의 AI인 ‘왓슨(Watson)’을 기반으로 개발된 AI 변호사 ‘로스(ROSS)’는 뉴욕의 대형 로펌 Baker&Hostetler에 도입되어 파산 관련 판례를 수집·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02년 미국변호사협회는 '2016년 변호사라는 직업이 없어질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도의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변호사의 업무가 전적으로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주변부에서부터 변호사 업무를 대체하는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재판에 필요한 자료 수집과 같은 기본적인 사무처리 이외에도, 범죄에 있어서 범인의 개인정보를 통해 분석한 재범률을 토대로 재판관의 형량 결정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며, 기업의 재무제표 및 유사 부정 사례를 학습한 후 장부 데이터를 해석하여 부정 의혹 사실을 발견, 회계 담당자에 보고함으로써 범죄와 부정에 관한 사전예방 장치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2016년 4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으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폭로한 '파나마 페이퍼스'가 있다. 파나마의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에서 조세 회피를 위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부자료가 유출된 사건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전·현직 국가 정상과 리오넬 메시 등 유명인들이 대거 리스트에 포함돼 파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리걸테크(Legaltech)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ICIJ에서 입수한 파나마 문서는 무려 2.6테라바이트(TB)에 육박하는 1천150만건으로, 이는 위키리크스의 1천500배에 이르는 양이다. 이러한 방대한 양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데이터를 기존 방식으로 분석할 경우 수년에서 수십년이 소요될 것이 분명했다. 이때 리걸테크의 빅데이터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추출해내는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통해 전세계 정관계 인사들과 금융기관 간의 흐름 등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면서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는 엄청난 충격과 반향을 일으켰다.

빅데이터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가질 수 있는 오해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앞으로의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빅데이터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들의 연계성 있는 구조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연관성 높은 검색이 가능한 상태가 되도록 하는 분석 기술이 핵심이고 이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중요 키워드가 될 것이다.

현재 리걸테크의 영역에서 빅데이터 분석 기술은 법률정보의 수집·관리와 증거자료의 검토 및 판별 분야, 그 외에도 M&A 과정에서의 기업실사 등 다양한 법률문제 해결 과정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M&A에서는 기업의 자산가치를 평가하는 업무로서 기업실사(Due Diligence)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VDR(Virtual Data Room) 솔루션이 이용된다. 기존의 M&A 기업실사는 보안이 확보되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기업자산 및 계약 등 관련 서류를 전부 모아놓고 엄중한 출입통제 하에 심사작업을 하였으나, 최근의 M&A는 모든 정보가 디지털 문서로 되어있고 그 방대한 양의 기업 정보 관련 서류를 합병사무 담당자가 전부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이 경우 활용되는 리걸테크 서비스가 VDR 솔루션으로, 클라우드에서 합병 관련 서류의 데이터룸을 만들고 어디에서나 복수의 합병사무 담당자가 모든 관련자료에 대한 동시 열람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검토 시간을 줄이면서도 보다 정확한 작업이 가능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러한 클라우드 데이터룸에 빅데이터 분석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자료 조사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데이터가 범람하는 지금의 시대에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법령과 판례는 물론이고 논문이나 양형기준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법률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관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률정보 중 변호사에게 필요한 내용을 선별 제공하는 것이 법률정보 데이터서비스이다.

법률정보 데이터서비스는 단순히 키워드가 포함되는 문서를 전부 검색(Search)해주는 기본적인 형태를 넘어서, 데이터서비스가 제공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전체 법률정보 데이터 중에서도 실질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조사(Research)·제공해줌으로써 변호사가 법령·판례를 검색하고 검토하는 범위를 방대하게 넓힘과 동시에 그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법률업무 중에서도 AI의 첫 번째 상용화 사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도 바로 재판에 필요한 자료나 정보의 수집 등 법률정보 데이터서비스이다.

인공지능은 전자증거개시(E-Discovery)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파나마 문서의 분석과 해석에 사용된 NUIX사의 검색 솔루션은 방대한 데이터를 검색하는 검색엔진기술에 AI를 도입하여 증거가 되는 데이터를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추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NUIX사는 E-Discovery와 시스템 리뷰 데이터 분석 기술을 사용하여 카테고리를 통합, 관련성 높은 문서를 추리하여 예측코딩작업을 통한 문서패턴·사람·장소·목적을 판별한 후 데이터 항목에 식별자를 부여하여 솔루션에 의한 링크를 함으로써 빅데이터로부터 더욱 효율적인 증거 검토 및 판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2016년 한국에서 개최된 ‘2016 국제 법률 심포지엄’에서 AI 활용 리걸테크 기업 Lex Machina의 창업자 조슈아 워커 박사는 “AI는 인간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 그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AI는 법률가의 적합한 판단을 지원하고 법적 다툼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리걸테크는 AI가 발전하더라도 인간과 기계의 역할에 분명한 차이를 두고 기계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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