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 10번 넘게 바꿔... 유서까지 써놨다” 국민청원에 참여자 20만명 육박
법조계 "원고·피고 인적사항 정확해야 배상 이뤄지는 민사소송법, 어쩔 수 없어"
"주소 섞어 적는 편법까지 동원되는 현실... 행정편의보다 피해자 인권이 우선"

[법률방송뉴스] 성범죄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했는데 내 인적사항이 판결문에 기재돼 송달됐다, 여러분이라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보복이 두려워 전화번호를 10번도 넘게 바꿨다는 피해자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에 육박한 동의를 얻고 있다고 하는데요.

민사소송에서 피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김태현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국민청원에 올라온 '성폭력 피해자의 집주소와 주민번호 등을 가해자에게 보내는 법원을 막아주세요'라는 게시물입니다.

참여 인원이 청와대 답변 요건인 20만명에 육박했습니다.

청원인은 게시글에서 민사소송 손해배상 판결문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민사 소송을 제기했더니 자신의 집주소와 실명이 그대로 기재된 판결문이 가해자에게 송달됐다는 내용입니다.

"내년 8월 가해자가 출소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전화번호를 10번 넘게 바꾸고 유서까지 써놨다"는 것이 청원인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법원 측은 형사가 아닌 민사는 돈이 오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민사소송은 원·피고의 인적사항이 정확해야 배상이 이뤄진다. 원고가 먼저 소를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고, 송달 장소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주장입니다.

법원 측 입장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이름이나 주소를 뺄 방법이 없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입니다.

[조현주 변호사/ 대한법률구조공단 울산지부]
“소송에서는 집행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동일성이 있어야 민사판결문을 가지고 가해자의 재산을 집행을 할 수가 있잖아요. 이 피해자가 그 사람이라는 걸 특정하기 위해서 아직 까지는 이런 걸 따로 마련해놓지 않은 상태예요 법원이...”

[남승한 변호사 / 법무법인 바른]
"민사판결은 당사자 간의 문제라서 원고가 내 이름 제거하는 게 일단 우리나라는 안 되죠. 미국이나 이런 데는 ‘존 도’ 이렇게 써서 소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글쎄 우리나라는 당사자주의이기 때문에 현재 법 구성으로서는 전혀 어려울 거 같고..."

때문에 피해자의 신원 보호를 위해 편법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현주 변호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울산지부]
“과거의 주민등록 주소지였던 곳 중에 주소를 한 군데 섞고, 변호사 대리인을 송달장소로 받게 해서 서류를 변호사 대리인으로 받고, 이렇게 편법을 쓰기는 하는데...”

관련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피해자의 신원을 가리고 판결문을 송달하는 내용이 담긴 민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사건관계인의 성명 등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과,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직권 또는 원고의 요청에 따라 원고의 성명과 주소 등 신원을 가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민사의 경우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책임은 원고에게 있고, 원고의 신원 공개를 피하기 위한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는 만큼, 피해자의 안전을 위한 법 제도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안은 현재까지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피해자의 인권보다 행정적 편의가 우선시되고 있는 우리나라 민사 판결문.

국민들에게 다가서는 열린 법원이 되겠다는 사법부의 포부가 왜 국민들의 법감정을 고려한 세밀한 민원에까지 미치지 못하는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법원의 담 높은 행정이 아쉬운 때입니다.

법률방송 김태현입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