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阻止)하다' 국어사전에도 안 나와... ‘저지(沮止)하다’의 잘못된 표현
법조인도 국어학자도 “처음 들어봐”... 1953년 형법 제정될 때부터 법전에
일본어의 잔재... "지금은 일본 신형법에서도 안 쓰는 말, 제발 고칩시다"

[법률방송뉴스] ‘조지’. 영국 왕의 이름인가 싶은 이 말이, 우리 법령에 존재하는 잘못된 일본식 한자어라고 합니다.

전혀 그 뜻을 가늠할 수 없는데요. 법률용어인데도 불구하고 현직 법조인들도 모르는 단어.

법률방송 연중기획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오늘은 ‘조지(阻止)’입니다.

김태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공무집행’ 중인 경찰관에게, 달아나던 조폭이 흉기를 들고 덤비는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공무집행방해죄를 규정한 우리 형법 제136조 2항입니다.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자”.

‘조지’. 법조문 앞뒤를 보면 한자 같기는 한데, 글깨나 읽었다 싶은 사람들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자칫 입에 담아선 안 될 비속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1953년 형법이 처음 제정되면서 사용된 용어입니다.

국어사전에 '조지'라는 말이 나오는지 찾아봤습니다.

발음은 같은데 의미가 다른 말, ‘어명’ ‘손잡이’ 등이 검색됩니다.

하지만 법전에 나오는 ‘조지’와는 다른 뜻으로 보입니다.

한자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조지'라는 단어의 의미가 짐작됩니다.

‘막힐 조(阻)’ 자에 ‘그칠 지(止)’ 자를 쓰는 ‘조지(阻止)’는, ‘막을 저(沮)’ 자에 ‘그칠 지(止)’ 자를 쓰는 ‘저지(沮止)’ 즉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저지하다’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 형법에 이 ‘잘못된 표현’이 사용된 것 역시 일제 잔재입니다.

일본어로 ‘저지하다’는 뜻의 말 ‘소시(そし·阻止)’가 바로 이 ‘막힐 조(阻)’ 자에 ‘그칠 지(止)’ 자를 한자로 씁니다.

시민들에게 '조지'라는 말을 아는지 물어봤습니다.

[채미영 / 서울 신림동] 
(조지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니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처음 보는 단어고, 전혀 몰랐어요”

[유화열 / 서울 역삼동]
“이런 단어 본 적 없는데... 제가 변호사인데요, 이 말 본 적 없어요. 형법 제가 공부를 했거든요”

기업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현직 변호사도 모르는 단어 ‘조지’.

그 뜻을 국립국어원에 물어봤지만 역시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는 반응입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
“최근에 저희가 필수 개선 행정용어라든가, 이런 것들 순화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서도 말씀하신 단어는 확인이 되고 있지 않아요. 그야말로 잘못 쓴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형법 전문가는 형법이 처음 제정될 때 잘못된 한자를 사용한 것이 지금까지 굳어져 죽은 법률용어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승재현 박사 / 형사정책연구원 박사]
“일본에 있는 지금 신형법에는 이 단어가 없거든요. 1953년 9월 18일 법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 있는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좀 고쳐져야 되는 부분이 아닌가...”

형법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단어 '조지’.

‘저지’라는 쉬운 말을 두고, 오랜 기간 바뀌지 않은 채 죽은 법률용어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김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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