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방송뉴스]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법관으로 취임할 때 대법원장 앞에서 하는 선서입니다.

선서란 여러 사람 앞에서 어떠한 일을 성실히 할 것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그 직위에 취임할 때 법령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공무를 공정하게 집행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를 합니다.
 
어떠한 직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선서를 한다는 것은, 이들의 직업이 단순히 한 개인의 생계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직무가 인간과 사회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것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추구하고 동의하는 가치에 대해 흔들림 없는 신념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살면서 ‘유토피아’라는 명저로 잘 알려진 토마스 모어는 영국의 왕 헨리 8세의 신임에 의해 대법관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가 당시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던 카톨릭 교회법을 무시하고 스페인 여왕 캐서린과 이혼하고 왕비 앤과 재혼하려는 데 반대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영혼을 파멸로 몰아넣지 않고서는 내게 제시된 선언문 대로는 양심상 도저히 선서할 수 없다"며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을 무효로 하는 선언문을 끝내 읽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535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융통성이 없었다고도 볼 수 있는 토마스 모어의 선택. 하지만 그의 선택이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절대 권력의 압박 속에서도 ‘법’이라는 당시 사회적 약속을 수호하려고 했던 토마스 모어의 의지와 태도, 그리고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법부 사상 초유의 재판거래 의혹 사태가 매우 이질적인 모습으로 교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으로 인해 재판받는 당사자는 물론 일반국민들도 법원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재판을 정치권과의 거래대상으로까지 여기는 사법부에 대해 전관예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일선 재판부에서는 재판절차와 판결 곳곳에서 사소한 실수가 적지않게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사상 초유의 재판거래 의혹 사태를 맞이한 대다수 법관들 역시 소위 ‘멘붕’ 상태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땅에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은 지금 당장의 재판에 더욱 집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재판거래 발상은 국민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법원이 오히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그 자체로 위헌적 발상입니다.

따라서 사법행정권 남용 가담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담정도에 따라 엄중한 처벌과 징계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헌법은 사법부 독립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거래 발상은 사법부 독립을 파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법부 독립은 사법부를 위한 것이 아니며, 국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사법부 스스로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헌법가치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김현성 변호사의 ‘시선 더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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