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은 끝났다"... '라 트라비아타'와 '춘희'와 '동백 아가씨'와 조윤선
"희극은 끝났다"... '라 트라비아타'와 '춘희'와 '동백 아가씨'와 조윤선
  • 유재광 기자
  • 승인 2017.04.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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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처음 본 것은 2008년 어느 봄날이었다. 여의도의 무슨 칼국수집이었던 것 같다. 첫인상은... '예뻤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얘기다.

18대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가 당 대변인에 임명된 시점이었던 듯하다. 기자들 몇 명과 술자리를 겸한 저녁 식사 자리였는데 어디서 났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조 대변인이 쓴 책을 가져간 것 같다.

다른 기자들 다 있는 자리에서 '주책' 맞게도 책에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조 대변인은 흔쾌히  '누구누구 기자님께...' 라며 몇 마디 '덕담'을 적고 '싸인'을 해주었던 것 같다.

읽긴 읽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후 책의 행방은 모르겠다. 그런데 잊고 살았던 '조윤선의 책'을 문득 떠올리게 하는 일이 생겼다.

 

조윤선 저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2007년 10월 출간.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첫 공판이 열렸다. 조윤선 전 장관은 이 재판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함께 ‘피고인’으로 법정에 나왔다.

호송차에서 내리는 조 전 장관의 모습은 ‘내가 알던 조윤선이 맞나’ 싶게 핏기 없고 초췌했다. 반짝반짝하던 얼굴은 오간데 없고 어둡게 그늘진 모습에 지쳐 보였다. 초췌함을 넘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조윤선 귤' 이라는 '검색어'가 눈에 띄었다.

관련해서 '조윤선 구치소' '조윤선 강박' '조윤선 급노화'... 이런 '연관 검색어'들이 어지럽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뭔가 하고 보니,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특검에 구속 기소된 조 전 장관의 구치소 생활에 대한 월간중앙 4월호 기사가 발단이었다.

내용은 조 전 장관이 구치소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 구치소 초기 교도관에게 5분 간격으로 "지금 몇 시예요?"라고 묻는 등 강박 증세를 보이고 있다,

구치소 입소 후 곡기를 사실상 끊고 귤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체중이 크게 줄어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 전 장관은 본인이 구치소에 수감될 줄 전혀 예상 못 했던 것 같다, 는 등의 내용들이다.

조 전 장관의 남편 박성엽 변호사가 접견 시간을 풀(full)로 채우며 '옥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원래 기사는 월간중앙이 썼고, 여러 언론사에서 '복사+붙이기'를 했고, '네티즌'들은 열심히 퍼나른 모양이다.

관련해서 구속을 전후해 '급노화'한 조 전 장관의 'before-after' 사진이 가십거리로 인터넷에 사방팔방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인터넷과 SNS에서 '조윤선 급노화'라는 제목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는 사진. /인터넷 캡처

사진에 달린 '댓글'들은 차마 소개하기 민망한 말들이 많았다. 문득 9년 전 '예뻤던' 조 대변인과 조 대변인의 책이 생각났다.  

제목과 시점을 찾아보니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라는 책이었다. 

조윤선이 어떤 사람인가. 서초에서 여고를 나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사시에 합격해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가운데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받았고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그러던 2002년, 조윤선은 16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노회한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나경원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에 '영입', '사상 최초 여당 대선 후보 여성 대변인'에 임명되며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 뒤 다시 김앤장으로 돌아갔고 2007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이 된다. 1966년생이니까 나이 마흔하나에 외국계 은행 부행장 자리를 꿰찬 것이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당 대변인에 임명, '얼짱 여당 여성 대변인'으로 언론과 세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다.

그리고 2012년 치러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 선대위 대변인, 대선에서 이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변인으로 거푸 임명되며 '박근혜의 입'이 된다.

조윤선은 이어 여성가족부 장관을 거쳐, '여성 최초 청와대 정무수석'이라는 타이틀을 단다.

2016년 총선에서 '신 친박 핵심'으로 '서초의 딸'임을 내세워 서초갑 경선에 나섰지만, '원조 친박'이었다 '멀박'(박근혜와 멀어진)이 된 이혜훈 후보에게 밀려 당내 경선에서 패한다.

여권이 그녀를 배려해 새누리당을 탈당한 진영 의원 자리인 용산 지역구를 '전략 공천' 형식으로 내줬지만 '서초의 딸'로 남겠다며 본인이 고사한다.

그리고 '어떤 분'의 배려로 그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며 여가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정권에서 두 번이나 '판서'를 한다. 

아마 생애에서 패배와 쓴맛을 본 것이라곤 서초갑 경선에서 이혜훈 의원에게 '아깝게' 밀린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선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기회마저 '서초의 딸'로 남겠다며, '용산의 양녀'가 되진 않겠다며 간단하게 거절한 걸 보면서 속으로 '역시 조윤선이군...' 하는 생각을 언뜻 했던 듯하다.

아니면, 보수당 후보면 막대기에 깃발만 꽂으면 웬만하면 당선되는 '서초'에서 '다음'을 기약한 것일 수도 있고.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서울 서초갑 예비후보로 등록한 조윤선 전 장관의 신년 연하장.
2016년 20대 총선 서울 서초갑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할 당시의 모습. /조윤선 인스타그램

서초의 여고, 서울대 외교학과, 김앤장 변호사, 컬럼비아 대학 석사, 미국 로펌과 연방항소법원 근무, 외국계 은행 부행장… 2007년 그녀가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를 쓰기 전의 경력들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과 음악을 좋아했던 그녀의 오페라 사랑은 대단하다. 오페라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전문가 못지않은 해박한 지식이 알려지면서 '오페라 칼럼니스트'로 2년 동안 월간 '객석'에 '오페라가 있는 명화'라는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젊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중심이 된 오페라 동호회 '라 돌체 비타'의 회장 직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 중이며 국립오페라단의 법률 자문을 맏고 있기도 하다."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에 나오는 저자 조윤선에 대한 출판사의 소개글이다.

그녀의 경력을 보고 있으면 '그림'과 '오페라'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 그대로 겹쳐진다. 왠지 '그런 취미와 취향을 꼭(!!)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게 한다. 

 

주세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1853년 3월 6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에서 조윤선은 첫 장을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할애했다.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3막으로 된 오페라다. 뒤마의 자전적 소설인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을 원전으로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이탈리아어 대본을 완성하였다.

줄거리는 18세기 파리 사교계의 꽃(=고급 창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라는 이름을 가진 젊고 잘생긴 귀족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얘기다.

어느 파티에서 비올레타를 만난 알프레도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 남자 저 남자 웃음을 팔아온 비올레타는, 거기다 폐병까지 얻어버린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순수한 사랑을, 그 순수함 때문에 거부한다.

하지만 알프레도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녀의 사랑을 구하고, 비올레타는 결국 알프레도의 구애를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파리 교외에 보금자리를 꾸린다.

그러나 그게 누구라도 사랑만 뜯어먹고 살 수는 없다. 사랑은 이상이지만 생활은 현실이다. 생활 감각이 없던 알프레도 대신 비올레타가 생활비를 대지만 곧 바닥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알프레도는 돈을 구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다. 이때 알프레도의 아버지가 비올레타를 찾아와 아들을 사랑한다면 아들의 미래를 위해 떠나달라고 요구한다.

처음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알프레도를 거부했던 그 마음처럼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떠난다. 알프레도는 ‘돈’ 때문에 비올레타가 자신을 떠난 걸로 오해한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두사람은 파리의 한 화려한 파티장에서 다시 만난다.

사랑했기에, 순수했기에, 그만큼 아팠기에, 비올레타를 다시 만난 알프레도는 도박으로 딴 돈을 비올레타에게 던지며 비올레타를 모독한다.

이때 이 자리에 나타난 알프레도의 아버지는 아들의 무례함을 꾸짖으며 사실을 밝힌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기엔 비올레타의 병세가 너무 깊어졌다.

누구보다 화려하고 뜨겁게 살아왔던 두 사람이지만, 지난날의 화려함과 열정, 애틋함은 ‘과거’로만, ‘기억’으로만 남고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뒤마의 자전적 얘기라지만 어찌 보면 그렇고 그런 얘기다. 이 그렇고 그런 얘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 바로 베르디의 음악이다.

 

 

 

두 사람의 눈부신 사랑을 축복하듯 라 트라비아타는 오페라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쿵짝짝 쿵짝짝' 하고 시작하는 멜로디는 들어봤을 그 유명한 ‘축배의 노래'(Brindisi : Libiamo ne’lieti calici)와 ‘빛나고 행복한 어느 날’(Un di', felice, eterea)로 1막을 시작한다.

그러나 인생에 어디 달콤함만 있으랴.

오페라는 3막, 쓸쓸히 죽음을 앞두고 있는 비올레타가 부르는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과 너무 늦어버린 재회, 알프레도와 비올레타가 함께 부르는 ‘사랑하는 이여, 파리를 떠나서’(Parigi, o cara)로 막을 내린다.

‘지난 날이여 안녕’ 이라...

붉게 피었던 꽃일수록 과거가 화려했을수록 사랑이 뜨거웠을수록, 시든 현재는 더 초라하고 재가 된 사랑은 더 안타깝다.

이 '라 트라비아타'에 조윤선은 자신의 책에서 ‘거친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여인의 눈물’이라는 부제를 주었다.

 

루제로 레온카발로가 작곡한 오페라 팔리아치. 1892년 밀라노 초연

조윤선은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의 마지막 장의 주제로 레온카발로가 작곡한 2막짜리 오페라 ‘팔리아치’에 할애했다.

떠돌이 유랑극단 단장 카니오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해 심한 강박 증세를 보인다. 실제로 아내는 이날 연극이 끝나는 대로 자신의 정부와 함께 도망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부인이 바람 나 도망간다'는 비슷한 줄거리의 '희극!'을 공연하다 카니오는 너무도 화가 치민 나머지 아내를 상대로 진짜로 ‘너의 정부가 누구냐’고 추궁한다.

아내는 어떡하든 연극을 마무리하려 하지만, 카니오는 현실과 연극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아내를 구하러 온 아내의 정부마저 죽인다.

‘죽을 만큼’ 혹은 ‘죽일 만큼’ 아내를 사랑했던 카니오는 아내가 자신의 칼에 숨지는 걸 보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라 광대여 웃어라. 비록 그대의 가슴이 찢어질지라도'라고 노래를 부른다.

연극이 아님을 알게 된 관중들은 혼비백산하고, 카니오는 힘없이 칼을 떨어뜨리고 혼비백산하는 관중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희극은 끝났다!’(La commedia e finita)

조윤선은 이 '팔리아치'에 ‘방랑자들이 노래하는 역설적 인생’ 이라는 부제를 주었다.

요약하면 조윤선의 책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는 라 트라이바타 ‘축배의 노래’로 시작해 팔리아치 ‘희극은 끝났다’로 끝난다.

 

지난 6일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피고인 조윤선'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봄날과 2017년 봄날,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같은 책이건만 10년의 터울을 두고 전혀 다른 조윤선이 각각 겹쳐진다.

전자가 '그림'과 '오페라'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이미지의 조윤선이라면, 후자는 ‘지난 날이여 안녕’이라는 비올레타의 아리아와 ‘거친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여인의 눈물’이라는 부제와 '희극은 끝났다'는 팔리아치의 마지막 대사에 겹쳐지는 조윤선이다.

2008년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얼짱 대변인에서 2017년 법조 출입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한 몸에 받는 구속된 피고인으로.

10년 사이 그녀의 인생은 웬만한 오페라 줄거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바뀌었다.

그 중심에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 

듣자 하니 여성 최초 정무수석에 취임하고 전임 정무수석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조윤선은 '이런 것도 해야 하냐'며 당혹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특검 수사결과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조윤선은 '당혹'해 했지만 '실행'했다.

문체부 장관으로 부임해서는 간담회에서 ‘위에서 부당한 지시가 와서 조직이 동요하는 문제가 많았으니 막아달라’는 건의가 나왔다고 한다.

이때도 조윤선은 ‘나는 여러분들을 보호하러 온 사람이 아니고 지시를 이행하러 온 사람’이라고 했다 한다.

하긴 이해가 간다. 나이 40 갓 넘겨 외국계 은행 부행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그 이후 인생은 늘 뭔가를 '아랫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 자리를 유지하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누구한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실제로도 잘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2008년 회식이 끝난 뒤 자신의 제네시스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기사에게 어디로 가라고 지시를 하며 창문을 올리는 그 짧은 순간 의도치 않게 조윤선의 표정을 보게 됐다.

그 얼굴은, 바로 그 직전까지 회식 자리에서 밝게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던 그 조윤선은 절대 아니었다. 딱부러짐을 넘어 뭔가 차갑기 그지없는. '하긴 국회의원인데...' 그땐 그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나는 여러분들을 보호하러 온 사람이 아니'라는 조윤선의 '지시'를 묵묵히 '이행'해온 문체부 직원들도 입장이 뒤바뀐 조윤선을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특검 조사가 시작되자, 장이 서자 특검에 불려 나가 이런저런 얘기들을 털어놓고 관련 자료들을 제출했다 한다.

결국 조윤선은 현직 장관으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지는 첫 번째 불명예 사례의 주인공이 됐다.

살면서 이런저런 최초의 기록을 세워왔던 조윤선이지만 '최초 현직 장관 구속'이라는 정말 원하지 않았을 기록까지 세우게 될 줄은 그 자신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긴 꿈에서조차 몰랐으니까, 생각을 안했을테니까 그렇게 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조윤선은 비올레타처럼 ‘지난 날이여 안녕’을 부르며 순순히 체념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첫 공판에서 피고인 조윤선은 “저에 대해 많은 오해가 쌓인 것 같다”며 “앞으로 변호인들과 성심껏 변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특검 기소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만큼 재판을 통해 ‘오해’를 풀고, 구속된 ‘피고인’에서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잡아넣은 '천하의 특검'을 상대로 법정에서 '법리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2008년 차량 뒷좌석에서 창문을 올리던 그때 그 표정의 조윤선이 떠오른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결은 다르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유신 대통령 시절 문화계에서 '외래어'를 추방하고 순 우리말만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던 적이 있었다. 자주국방을 구현하겠다며 '핵무기'를 개발하던 시절이었다.

'어니언스'는 '양파들'이 됐고 '바니 걸스'는 '토끼 소녀'가 됐다. 이름을 안 바꾸고 꿋꿋하게 버텼던 사람은 '패티 김' 정도가 유일했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그 이전부터 '라 트라비아타', 동백꽃 여인도 동백나무 춘(椿) 자에 아가씨 희(姬) 자를 써서 '춘희'(椿姬)로 많이 번역했다.

라 트라비아타를 모티브로 '동백 아가씨'라는 영화도 만들어졌고, 그 주제가가 한국 가요사의 불후의 명곡 가운데 하나인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다. 가사가 예술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모르긴 몰라도 조윤선도 지금 어찌됐든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멍이 들었'을 듯하다.
 
조윤선이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에서 첫 장을 할애한 라 트라비아타.
 
'마리'라는 이름을 가졌던 동백꽃 여인의 실제 주인공은 한 달에 25일은 횐 동백꽃을,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꽃을 머리에 꽃았다 한다. 붉은 동백은 자신의 '생리'날이었다 한다.
 
화려하고 화려한 파리 화류계의 여왕이었던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쓸쓸히 부른 '지난 날이여 안녕'은 이렇게 시작해 이렇게 끝난다.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지난 날이여 안녕
장밋빛 같던 내 얼굴은 이제 없구나 
......
이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세요
하나님, 이젠 모든 것이 끝입니다
 

'장밋빛 같던' 조윤선...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를 두고 마주한 조윤선의 십 년.

‘희극’은 끝났지만 조윤선의 재판은 이제 시작됐다. 첫 공판에서 진술한 대로 부디 그녀의 '오해'가 풀리길.

그녀의 건투를 빈다.

유재광 기자 jaegoang-yu@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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