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지법 "특별한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 돌보지 않고 학생들 구조... 순직 군경에 준하는 예우 주어져야 합당"

법원이 세월호 참사 당일 학생들의 대피를 돕다가 숨진 교사들을 '순직군경'으로 인정했다.

숨진 교사들의 유족은 국가보훈처가 '세월호 순직 교사들은 순직공무원이지 순직군경은 아니다'라며 순직군경 등록을 거부하자 소송을 냈었다.

수원지법 행정2단독 김강대 판사는 고 최혜정(여·당시 24세) 교사 등 안산 단원고 교사 4명의 유족이 국가보훈처 경기남부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순직군경) 유족 등록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유족들의 청구를 인용, 순직군경 등록을 거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했다고 24일 밝혔다.

최 교사 등은 2014년 7월 순직공무원으로 인정됐지만 유족들은 세월호에서 숨진 교사들을 순직군경으로, 유족들은 순직군경유족으로 등록해 달라고 국가보훈처에 요청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한인 교포가 운영하는 미국 우표 제작 대행사 골든애플즈가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 숨진 고 최혜정 단원고 교사와 박지영 세월호 승무원의 희생정신을 기려 2015년 4월 발행한 우표.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며 어머니와의 통화를 끊고 구조활동을 하다 숨진 고 전수영 단원고 교사. /연합뉴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순직군경이 되려면 직무 자체의 목적이 국가의 수호·안전 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거나 통상적으로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에 지속적·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숨진 교사들을 순직공무원으로만 등록했다. 

이에 유족들은 "교사들이 목숨을 바쳐 학생들을 구조했고 이는 실질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군경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김 판사는 "고인들은 특별한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이나 안전을 돌보지 않고 학생들의 구조활동에 매진함으로써 통상 군인이나 경찰·소방공무원이 담당하는 생명과 신체에 고도의 위험을 수반하는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해 이에 준하는 예우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김 판사는 "국가유공자법을 보면 순직군경이 되려면 군인이나 경찰, 소방공무원이라는 신분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지만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을 보면 일반 공무원도 이에 해당할 여지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공자법 시행령은 순직군경을 '공무원으로서 재난 관리 등 생명과 신체에 고도의 위험이 따르는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순직군경은 특별한 제외 대상이 아닌 경우 현충원에 안장되고 유족 보상금이 지급되지만, 순직공무원은 국립묘지법에서 정하는 위험한 직무 수행 중 사망해 안장대상심리위원회에서 대상자로 인정받아야만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롭고 유족 보상금도 지급되지 않는 등 처우에 차이가 있다.

이번 재판을 통해 당시 교사들의 구조 활동도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2학년 9반 담임이었던 최혜정 교사는 학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너희들 내가 책임질테니까 다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말하고, 많은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SNS에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는 글을 올렸다.

최 교사는 탈출과 구조가 비교적 더 쉬운 5층에 숙소가 있었지만 바닷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 4층으로 내려가 객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탈출을 도왔다. 최교사는 4월 17일 선박 인근 해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구명조끼는 입고 있지 않았다. 

2학년 2반 담임이었던 전수영 교사도 침몰 당시 "구명조끼를 입어라" "침착하고 용기를 내라"는 등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SNS에 올리며 학생들의 구조를 도왔다.

세월호에서 구조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선사 조리장은 "3층에서 학생들을 다 올려보내고 힘이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앉아있던 여교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진술해 재판정을 숙연하게 했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야 한다"며 어머니와의 통화를 급하게 끊은 전 교사는 세월호가 침몰하고 한 달이 더 지난 2014년 5월 19일 학생들의 숙소가 있던 3층 주방과 식당 사이 출입문 부근에서 발견됐다. 전 교사도 최 교사처럼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다.

박육근(당시 52세) 2학년 부장교사는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을 데리고 갑판 출입구로 올라갔지만, "죽더라도 학생들을 살리고 내가 먼저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바닷물이 가득한 선내로 학생들을 구조하기 위해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 착용법을 알리며 안심시켰던 박 교사는 5월 5일 선박 내 4층 선수 중앙 왼쪽 3번방에서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과 함께 발견됐다.

2학년 8반 담임 김응현(당시 44세) 교사도 학생들을 데리고 갑판 출입구로 올라갔지만 다시 선내로 들어가 "큰 배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학생들을 안심시키며 끝까지 함께 했다. 박 교사는 5월 14일 4층 선수 왼쪽 1번방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한 학생들과 함께 발견됐다.

최혜정 교사의 아버지는 "해경 구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구조 활동을 펼치다 숨졌는데 보훈처가 순직군경으로 인정해주지 않아 억울해서 소송하게 됐다"며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순직군경으로 인정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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