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貨物) 신앙’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Cargo Cult'라고 한다. 다른 번역으로는 ‘화물 숭배’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비행기나 배로 실어 나르는 ‘화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숭배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물신주의로 화물 신앙이 최초 관찰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주로 남태평양의 섬들에서다. 대부분 오랜 세월 외부와 격리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해온 원시 부족들에서 나타났다.

배나 비행기를 타고 왔다 떠난 서양인들을 그들이 떠난 뒤에 신격화한 것이다.

화물 신앙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은 배나 비행기가 착륙할 때의 모습을 재현하며 종교적 의식을 거행하거나, 짚 등으로 배나 비행기 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 자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서양인들이 섬에 지은 공항을 흉내 내 활주로를 만들거나 격납고, 관제탑, 라디오 등의 '소품'이 활용되기도 한다. 무전 교신할 때 쓰는 헤드셋 모양의 장신구를 착용한 종교 지도자가 하늘을 향해 팔을 휘젓거나 하는 식이다.

비행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공항 대신 항구를 재현하거나 선박 모형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버전도 있고, 서양 군대의 사열식을 재현하는 경우도 있다.

 

화물 신앙의 다양한 형태.

큰 틀에서 화물 신앙도 여느 종교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예수가 떠난 뒤 십자가라는 아이콘을 신성시하며 교회를 세운 거나 붓다가 떠난 뒤 불상을 모시고 절을 세운 것과, 비행기를 만들고 숭배하는 것과 대상을 신성시한다는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는 없다.

그게 마음의 평안이든 살아서 해탈이든 죽어서 천국이든 무언가를 바라고 믿는 자의 '필요'에 의해 숭배의 대상이나 궁극적으론 종교가 출현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화물 신앙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 나왔는가.

그걸 문명의 이기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이들 외부와 고립된 원시 부족 사회에 처음 나타난 서구인들은 원시 부족들이 이전에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물'과 함께 나타났다.

초콜릿의 그 달달함과, 새끼손톱보다 작은 알약 하나면 배 아프고 머리 아픈 게 씻은 듯 사라지고, 삽과 그릇, 뚝딱뚝딱 지은 집의 아늑함과 편리함 등등.

입는 거 먹는 거 자는 거, 이 모든 것이 원시 부족에겐 그야말로 신기원이고 새로움 자체였다.

그런데 서구인들이 떠나면서 이 모든 문물도 함께 사라졌다.

'아등명 법등명'(我燈明 法燈明). 붓다가 열반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 '너희들은 나를 의지하지 말고 너희 자신을 등불 삼아 진리(법)를 등불 삼아 해탈 정진하라'.

그럼에도 제자들은 믿고 의지할 게 필요했다. 붓다 생전의 말씀을 모아 경(經)을 만들고 주석과 해석을 달아 전(典)을 만들고, 이윽고는 불상을 만들고 탑을 세우고 절을 만들었다.  

원시 부족들에게도 그런 경과 전, 불상과 탑, 절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비행기'로 발현된 것뿐이다. 그리고 이들 원시 부족들이 비행기를 통해 염원하고 갈구했던 건 비행기와 함께 가버린 그 서구의 문물들이었다.

이 지점에서 화물 신앙은 이루어질 수 없는, 현세에 구현될 수 없는 바람이 된다.

비행기를 만들어 놓고 비행기와 함께 온 '그들'이 했던 것을 아무리 따라해도, 아무리 간절히 빌어도 '화물'은 오지 않는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신앙'만 더욱 깊어질 뿐이다. 

 

이런 화물 신앙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더욱 크게 퍼져 나간다. 아무 문화적 교류나 접촉이 없는 남태평양 연안의 섬들에서 비슷한 화물 신앙 의식이 2차 대전 이후 서구인들에 의해 다수 관찰된 것이다.

이는 우선 이 지역이 태평양전쟁 이전엔 서구인이나 현대 문명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고, 미군의 전술이 일본군이 점령하지 않은 지역에 비행장을 중심으로 군사기지를 건설하고 인근의 일본군을 박멸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며 같은 형태의 진격을 계속하는 이른바 '개구리 뛰기' 작전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들 원시 부족들에게 미군 비행장이나 비행기, 항만, 격납고, 막사, 오락시설 등의 시설과 호의로든 노역의 대가든 민심을 얻기 위한 민사 작전의 일환으로든 여기서 흘러 나온 막대한 물자들은 분명 '신세계'였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부족들은 화물을 넘어 화물을 가져온 미군 자체를 신으로 섬기거나 심지어 특정 미군을 신으로 섬기기까지 한다.

남태평양의 바누아트 타나 섬에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존 프럼 신앙'(the Jonn Frum cult)이다.  

  

미군 군복을 입은 '존 프럼' 복장을 하고 있는 존 프럼 신앙 숭배자.

바누아트는 호주에서 동쪽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20만 정도의 조그만 섬이다.

이 바누아트에 2차 대전 기간 동안 무려 30만의 미군이 주둔했다. 외부 세계와 왕래가 없던 이 조그만 섬나라에 수십만에 달하는 미군이 쏟아내는 막대한 물자는 말 그대로 '신의 물자' 였을 것이다.

존 프럼 신앙에서 '존 프럼'은 그 신의 화물을 전하여 준 하늘의 사자로 묘사된다. "그를 따른다면 그가 너희에게 부와 번영을 안겨다 주리라" 이런 식이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 존 프럼이 떠난 뒤에 '존 프럼 신앙'은 더욱 본격적으로 신앙과 종교의 형태를 띠게 된다. 

미군이 쏟아내던 막대한 화물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존 프럼'이 갔기 때문이다. 그가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숭배해야 한다. 이같은 '신의 문물'에 대한 강렬한 염원과 그 전달자로서의 존재로 '존 프럼'이라는 숭배 대상이 존 프럼 신앙의 바탕이다.

이윽고 1957년 바누아트에 '존 프럼의 날'이 만들어진다. 날짜는 매년 2월 15일. 존 프럼이 바누아트를 떠난 날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를 기리기 위해 존 프럼 교도는 특별한 의례와 의식을 치른다.

맨몸에 물감으로 'USA'라는 글자를 세기고, 줄을 맞춰 대나무 막대기를 받쳐 들고 성조기를 향해 사열하는 의식이다. 아마도 존 프럼이, 존 프럼의 부대가 한 행동을 흉내 내는 것일 거다. '그 분'이 했던 모든 것을 따라한다.

2007년 2월 15일 존 프럼의 날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치른 존 프럼 교도의 수장 '이삭 완 니키아우'라는 이름의 지도자는 그 몇 년 뒤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존 프럼은 우리의 신, 우리의 예수입니다. 그리고 그는 종국엔 돌아올 것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존 프럼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존 프럼 신앙의 믿음구조 자체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마 존 프럼은 끝내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존 프럼의 날'에 존 프럼 숭배 의식을 치르고 있는 바누아트 사람들.

비행기를 타고 나타난 이들은 놀랍고 신기한 물건들을 '생산'하진 않는다. 어디서 비행기가 나타나면 물건들도 함께 나타난다.

원시 부족들은 생각한다. "아, 저 물건들은 하늘에서 신들이 보내주는 거구나. 그리고 그 '신들의 문물'은 '비행기'를 통해 오는 거구나. 그럼 우리도 비행기를 만들고 숭배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그러면 그 신들의 물건들이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화물 신앙의 의식은 그렇게 탄생한다. 즉 비행기나 무전실은 신전이나 제단이 되고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무전을 교신하는 등의 행위는 하늘에 신의 문물을 기원하는 제사 의식이 된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알지만 다 헛짓이다. 비행기를 만들어 숭배한다고 화물이 오진 않는다. '존 프럼의 날'을 만든다고, 가슴에 USA를 새기고 성조기를 사열한다고 존 프럼이 돌아오진 않는다.

논리학에선 '인과관계의 오류'라고 한다. 원인-결과 관계가 아닌 단순 선후 관계 등을 인과관계로 착각하는 것이다. 짚으로 비행기를 만들고 빈다고 화물이 오진 않는다.

비행기가 오고 감은, 비행기를 타고 내림은 선후 결과적으로 화물이 비행기를 통해 온 것이지,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행위가 화물이 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데 이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영어권에선 cargo cult, 화물 신앙이라는 말을 일반명사화해서 '인과관계를 혼동하여 부차적인 것을 중요한 원인으로 믿는 것' 정도의 뜻으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화물 신앙은 모르고 하면 '무지'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경우엔 '사기'가 된다.

그래서 브라이언 캐플란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는 20세기에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기획하고 벌인 경제 정책들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화물 신앙"(the largest cargo cult the world has ever seen)이라고 비꼬았다.

공산주의 이상이 실현이 될 줄 알고 했다면 '무지'했다는 거고, 안될 줄 알면서도 했다면 '사기'를 쳤다는 거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뿐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화물 신앙이라는 말이 쓰인다. 양자전기역학의 재규격화이론으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며 현대 물리학의 주춧돌을 놓은 리처드 파인만을 통해서다.

파인만은 1974년 미국 최고의 공대 가운데 하나인 칼텍 졸업연설에서 "화물 신앙 과학(cargo cult science)을 하지 말라"고 역설한다.

여기서 파인만은 진실한 과학적 실험이나 근거가 부족한데도 외양만 과학적 이론의 흉내를 내는 것을 '화물 신앙 과학'이라고 지칭했다. 

캐플란과 마찬가지로 파인만도, 모르고 하면 무지고 알고서도 하면 사기인 것이 화물 신앙이니 무지로든 사기로든 화물 신앙 행위는 하지 말라고 과학의 엄격성을 강조한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전자기장과 전자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는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 QED)을 만들고, 아원자 입자(subatomic particle)의 행동을 기술하는 시공간 다이어그램(파인만 다이어그램)을 창안한 뛰어나고 카리스마 있는 이론 물리학자이다.

남태평양 섬들의 원시 부족들이 사기로 화물 신앙을 시작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어떤 면에선 간절했고 순수했고 그러면서 무지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합이 화물 신앙일 것이다.

그렇게 하면 '존 프럼'이 '화물'과 함께 올 줄 알았을 것이다.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이미 관성이 돼버렸기에 믿음을 멈추거나 버릴 순 없었을 것이다.

무지에 기인한 종교가 대개 그렇다. 처음엔 몰라서, 나중엔 알아도 믿음을 쉽사리 바꾸지 않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인지 부조화 이론'의 대표적인 부정적 사례다.

내가 알고 믿는 것과 실제 주변 환경이나 진실과의 괴리, 이런 인지 부조화의 상태를 심리적으로 대개의 사람들은 못견뎌한다.

문제는 진실과 환경에 부합하기 위해 믿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과 세계관에 환경을 맞춘다는 것이다. '내가 맞다. 세상이 잘못됐다'는 심리 기제. 일종의 가상 현실을 만들어내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좌절과 현실의 벽에 부닥쳤을 때는 그렇게라도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그 자체를 탓하긴 어렵다.

 

 

경찰이 최근 보수 단체 태극기 집회에서 "계엄령을 선포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선동한 보수단체 관계자들에 대해 '내란 선동'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군 인권센터의 고발 이후 7개월여 만의 수사 착수다.

피고발인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 보수단체 관계자 5명으로 이들은 집회 현장이나 인터넷을 통해 "촛불집회는 북괴 특수군의 청와대 점령 작전"이라거나 "군대는 일어나 나와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탱크 나와라. 총 들고 나와라" 등의 내란 선동 발언을 한 혐의다.

'내란 선동' 여부를 떠나 집회와 시위의 자유야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니 정치적 의사 표시로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드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드 배치처럼 한미 동맹의 문제도 아닌 대통령 탄핵심판 반대 집회에 왜 성조기를 들고 나왔는지, 연일 이어지는 박 전 대통령 뇌물 혐의 재판 날이면 어김없이 법원 주변에 왜 성조기를 들고 나와 집회나 시위를 벌이는가 하는 점이다.

추정컨대  6·25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미국이 구해준 것처럼, 전후 그 어려운 시절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지 못했을 거라는 '구세주'로서 고마움의 기억이 작용한 거 같다.

'좌파에 나라가 넘어갈 수도 있는, 이미 넘어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이번에도 미국이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와 바람이 성조기에 투영돼 나타난 게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일단 미국은 대통령 탄핵심판도, 대한민국 법원 판단에도 간여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이건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대한 문제다.

그래서 행여라도 미국이 박 전 대통령을 구해주기 바라는 그런 바람에서 성조기를 가지고 나온 것이라면 대단히 적절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좀더 근본적으로,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3·1절에 열린 탄핵 반대 집회. 군중 한가운데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있다. /연합뉴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라고 있다. 1905년 7월 29일 일본 내각 총리대신이자 임시 외무대신이었던 가쓰라 다로와 미국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 사이에 맺어진 비밀 협약이다.

일본의 승리로 끝난 러일전쟁 이후의 동북아 정세에 대해 논의한 협약이다. 내용은 총 3개 조항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한마디로 자기들 마음대로 필리핀은 미국이 먹고 조선은 일본이 먹는다는 내용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밀약 내용을 극비에 부친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실행된다.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받은 일본은 그 넉 달 뒤인 1905년 11월 17일 총칼을 앞세워 고종과 대신들을 협박해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을사늑약이다.

우리 언론 사상 가장 빛나는 글의 하나인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발표되고 시종무관장() 민영환() 등 뜻있는 조정 인사와 재야의 선비들이 자결로 항거하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장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기울어진 국운과 역사의 추를 돌리진 못했다.

무엇보다 허망한 것은 고종이 미국에 체재하고 있던 황실고문 헐버트(H. B. Hulburt)를 통해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라며 보낸 보호조약 무효 선언이다.

고종은 여기서 “짐은 총칼의 위협과 강요 아래 최근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이른바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한다. 짐은 이에 동의한 적도 없고 금후에도 결코 아니할 것이다. 이 뜻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기 바란다”라며 헐버트에게 이를 만방에 선포하라고 하였다.

고종이 어찌 알았으랴. 그 미국이 일본에게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권을 인정하는, '갖다 먹어라'는 밀약을 맺어줬음을. 그것도 모르고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라'는 뜻을 전했으니, 그러니 이 어찌 허망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안간힘을 내서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이준() 등을 파견해 국제 여론에 호소, 국권 회복을 기도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고종은 이게 빌미가 돼 왕위를 순종에 넘기고 강제 퇴위 당한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없다지만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없었다면,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그리 쉽고 빠르게 조선을 식민지로 할 수 있었을지, 조선이 그리 쉽게 망국의 길로 들어섰을지 따져볼 일이다.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 1863∼1907). 1917년 1월 21일 승하. 고종은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왕위를 뺏긴 지 12년, 조선이 망한 지도 9년. 망국의 황제 고종은 1919년 1월 21일 급작스럽게 승하한다. 민간에선 시중 들던 나인들의 돌연한 죽음 등과 연관지어 고종 독살설이 퍼진다. 그리고 고종의 승하는 국장 등을 계기로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이어진다. 3·1 운동이다.

학교에선 1918년 선포된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3·1 운동의 도화선이자 동력이 됐다고 배웠다. 반쪽의 진실이다. 그리고 반쪽의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전리품 나누기였던 베르사유 조약을 공고히 하기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족자결'은 오스만 제국이나 헝가리 제국 등 패전국 치하의 식민 국가에만 해당한다. 승전국 치하의 '민족'들은 해당하지 않는다.

패전국의 민족을 줄을 세워 멋대로 그어놓고 독립시킨 나라들 때문에 짧게는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고 길게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발칸반도 등 동유럽 국가들에서의 인종 갈등의 씨앗을 뿌려 놓은 것이 베르사유 조약이고 민족자결주의인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1945년 8월 15일.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 자력이 아닌 외세에 의해 도둑처럼 독립됐지만 국내외 독립투사들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중국 충칭에 둥지를 틀고 있던 임시정부는 1941년 이미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마련해 발표했다. 조소앙의 정치·경제·교육 균등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보통선거에 의한 민주공화국이라는 해방된 나라의 미래를 그려놓고 1942년에 좌우 통합 정부를 구성했다.

국내에선 여운형이 해방 한 해 전인 1944년 8월 일제 타도와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기치로 조선건국동맹을 결성했다. 건국동맹은 1945년 8월 15일 조선이 해방되자마자 바로 건국준비위원회로 전환한다.

안재홍 등 민족주의자들과 여운형 등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한 '건준'은 전국에 지부를 설치하고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며 사실상 국가 조직 역할을 수행한다.

건준은 그러면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에게 '조선의 정치범과 경제범을 즉각 석방하라', '치안 유지와 건설 사업에 간섭 말라'는 등 5개 요구 사항을 통보하며 건국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건준은 박헌영이 들어오며 공산주의 계열로 기울어 역사적 평가는 갈리지만, 해방 이후 조선 인민들이 자주적으로 상황을 주도하며 수습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임정과 건준 등 국내외의 이런 자주 독립국가 건설 노력과 시도, 나아가 일제 부역자 처단과 잔재 청산은 단 한 명의 '미군'에 의해 무력화되고 좌절된다.

태평양 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맥아더다.

맥아더는 1945년 9월 7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지휘하는 승리의 우리 미국 군대는 오늘부로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국 영토를 점령한다"며 맥아더 포고령 1호를 발포한다.

6개의 '점령 조항'(conditions of the occupation)으로 돼 있는 포고령 1호 1항은 "북위 38도선 이하 한국 영토와 인민들에 대한 모든 정부 권한은 당분간 나의 관할을 받는다"이다.

포고령 1호 2항은 "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 모든 정부 관료와 공공기관 종사자들, 기타 모든 필수직무 종사자들은 그 전에 해오던 기능과 업무들을 계속 수행한다"이다.

포고령 1항은 사실상 건준은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한국민의 모든 자생적 정치 조직의 정통성과 역할을 부인한 것으로 한국인들의 자주적인 통치 활동 및 권한을 부정한 것이다.

포고령 2항을 통해선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총독부에 부역 행위를 한 친일 관료 나아가 독립투사들을 핍박하고 박멸했던 친일 경찰 및 군인 등 사실상 모든 친일 세력에 면죄부를 준 것에 다름아니다.

결과적으로 맥아더 포고령은 정치적으론 좌우를 아우르는 자주 정부 수립을 막아 이승만 등 극우 친미 세력이 해방 공간에서 정권을 잡게 되는 직접적 계기와 힘이 됐고, 역사적으로는 친일파 처단과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꺾어버린 것이다.

그 맥아더는 6·25 당시엔 북한에 대한 핵폭탄 투하와 중공과의 전면전 불사 등을 주장하다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으니, 그나마 한반도가 세계 두번째로 원폭이 피폭된 땅을 면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니 맥아더가, 미국이, 미군이 6·25 때 대한민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아 준 공이 있다 해도, 거슬러 올라가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에 조선을 먹이로 던져줬고 해방 이후엔 친일파 청산과 자주 정부 수립을 좌절시킨 과가 있으니 공과는 따져볼 일이다.

마찬가지로 '성조기'도 무조건적인 추종과 선의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태평양전쟁 미군 최고사령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의 전쟁을 총지휘하며 1945년 8월 일본을 항복시키고 일본점령군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다시 화물 신앙으로 돌아가면 문화인류학자들은 화물 신앙의 출현 조건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극심한 '사회적 스트레스', 다른 하나는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십이다.   

이해가 간다. 화물을 기준으로 있었던 게 사라졌으니, 누리던 게 없어졌으니, 영원할 것 같았던 게 사라져 버렸으니 상실감과 박탈감이라는 '스트레스'가 발생했을 것이다. 이때 '신화적 꿈'(myth-dream)을 가진 지도자가 나타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외친다.

군중들은 열광하고 몸에 붉은 글씨로 USA를 쓰고 대나무 총을 들고 성조기를 사열하는 의식을 마다하지 않는다. 성조기를 들고 나와 '우리 대통령'을 외치는 '태극기 집회'와 묘하게 겹쳐진다.

일국의 국회의원과 대한변협 회장 등을 지낸 명망가들이 거리에서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대통령은 무죄다. 좌파들의 음모다"고 외친다. 

'신화적 꿈'을 제시하는 이들 '카리스마 리더'들에게  '박근혜의 무죄'를 믿는 시민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태극기는 그 신화적 꿈을 상징하는 소품이자 의식이 된다. 더불어 성조기도.

일단 꿈이 신앙으로 수용되면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화물 신앙을 수용한 원시 부족들도 이후 들어간 선교사들이 "그렇지 않다. 그런다고 화물이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거나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한다.

박 전 대통령 뇌물 혐의 등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이런 저런 진술이나 정황 증거들이 이어지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뇌물 수수 공동정범으로 돼 있는 이재용 삼성선자 부회장 1심 선고 공판에서 법원은 뇌물을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불과 일주일도 안된 일이다.

주변 현실과 실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태. 비행기를 만들어 놓고 빈다고 화물은 오지 않는다, 성조기를 사열한다고 존 프럼은 오지 않는다. 올 수 없다 해도 믿지 않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

재판 전개 과정과 객관적 상황은 아랑 곳 않고 '박근혜 대통령은 음모의 희생양'이라고만 굳건하게 믿는 사람들. 전형적인 화물 신앙이다. 

 

대한변협 회장 출신 김평우 변호사. 탄핵심판 대통령 대리인단으로 헌재 안에서는 탄핵의 '부당함'을, 헌재 밖 집회와 시위에서는 "우리가 노예냐"며 탄핵 불복종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연합뉴스

맨부커 상 등을 수상한 치누아 아체베라는 나이지리아 출신 소설가가 있다. 아체베가 1984년 쓴 '나이지리아가 가진 문제'(The Trouble with Nigeria)라는 책에 '화물 신앙 사고방식'(cargo cult mentality)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아체베는 "많은 개발도상국가의 지도자들이 이런 화물 신앙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며 그들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결한 선언,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는 개도국 지도자들의 행태를 '화물 신앙 사고방식' 이라고 지칭해 비판했다.

한마디로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행태를 꼬집어 화물 신앙 사고방식이라 지칭한 것이다. 모르고 하면 무지, 알고도 하면 사기가 되는 화물 신앙의 정치적 버전인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 증대, 일자리 중심 창조경제, 전작권 환수, 동남권 신공항, 심지어 2020년 달 탐사 "달에 태극기를 꽂겠다"는 공약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을 전후해 내놓은 공약들이다. 이루어진 건 없거나 없을 것이고 그나마 있던 것마저 퇴보한 것들도 수두룩하다.

미사여구, 말의 잔치만 풍성한, 아체베 식으로 하면 박 대통령은 전형적인 '화물 신앙 사고방식'을 가진 '지도자'다. 그 와중에 최순실이라는 일개 민간인에 의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졌다. 그 대가가 탄핵과 구치소 수감, 지금의 뇌물 재판 사태다.

검찰과 법원 칼날 위에 선 사람도, 그 사람을 위하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을 이끌고 선도하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자꾸만 '화물 신앙'이라는 넉 자가 겹쳐져 보인다. 무지거나 사기거나.

자국의 정치 현실에 비판적이었던 아체베이지만 나이지리아는 아체베에게 '국가 공로상'을 수여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고은 정도 되는 시인까지 포함해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21세기가 열린 지도 십 몇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 무슨 '블랙리스트' 운운하고 있으니,

태극기는 그렇다 해도 뜬금없는 장소에서 왜 그렇게 성조기는 흔들어 대는 것인지, 군대 3년이 모자랐는지 군복들은 왜 그렇게 사랑하는지, 특검은 왜 '죽이겠다'고 협박한 건지,아프리카나 나이지리아를 낮추어 볼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국격이 아프리카 나라보다 못한 건지, 이게 다 누구 때문인지.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으면 '그 분' 말씀대로 내가 이럴려고... 자괴감이 들 뿐이다.

허나 어쩌겠는가 남태평양 원시 부족처럼 '화물 신앙' 교도로 살겠다는데. BBC나 문화인류학자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 되나' 지켜보며 '관찰'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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