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에 의혹 전반 폭로
"정권 입맛에 안 맞는 사람들을 철저히 차별하고 배제"
"주도한 사람들이 이제 와 부인하는 건 너무나 비겁한 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폭로한 유진룡(6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 2시10분부터 유 전 장관을 불러 조사했다. 유 전 장관은 특검팀이 공식 수사를 시작하기 전 비공개 수사 과정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블랙리스트 의혹의 배후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서울 대치동 특검팀 사무실에 출석하면서 취재진과 만나 “블랙리스트 작성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오후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검팀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 전 장관은 “이 정부에서 책임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죄송스럽다. 국민께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면목이 없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한 뒤 “이번 김기춘 전 실장의 구속을 계기로 해서 우리나라가 다시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블랙리스트의 정의부터, 그 집행 과정 등에 있어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이 겪었던 고충까지 관련 의혹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의 정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얘기를 하자면,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까만 명단이 아니다. 정부 예산이나 제도라든가 이런 공공의 자산을 가지고 자기들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아주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차별하고 핍박한 행위 자체를 블랙리스트라고 얘기하는 것”이라며 “명단 자체가 어떤 형태고 몇 명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문제의 첫번째 핵심은 블랙리스트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라며 “블랙리스트는 분명히 있었고, 지난번 해외 가족여행을 떠나며 굳이 언론사 인터뷰를 한 것은 블랙리스트 유무에 대해 계속 진실게임을 하기 때문에 분명히 있었던 것이란 걸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지금은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다. 유일하게 김 전 실장 혼자 없다고 한다”며 “조윤선 전 장관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건 인정했다. 분명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블랙리스트의 실재를 전제로 두번째 핵심은 블랙리스트를 누가 만들었느냐인데, 블랙리스트는 저와 동료, 후배들이 목격하고 경험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볼 때 분명히 김 전 실장이 주도한 것”이라며 “(김 전 실장이) 취임한 후 그런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분이 수시로 수석회의나 저를 통해 블랙리스트에 해당되는 행위를 지시하고 실제로 리스트 적용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분명히 김 전 실장이 거기에 대해 큰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도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블랙리스트 작성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 유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는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 구체적으로는 자기들의 정권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해 한 것”이라며 “그 사람들을 좌익이란 누명을 씌워 배제하는 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정당한 일 아니냐는 일부 주장이 있음에도 김 전 실장을 비롯해 주도하고 관리한 사람들은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며 “그 일을 한 사람들이 자기는 모른다 안했다고 하면, 그 일을 누가 했는지 그 사람들이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부인하는)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자기들이 소신을 가지고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그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핍박하고 모든 조치를 강요했으면서 이제 와 자기들은 모른다는 태도는 너무나 비겁한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그들이 정당하게 한 일이라는 자신이 있다면 누가 옳은지 그 사람들과 토론할 용의가 있다. 다 도망가고 자신들은 모른다, 안했다고 하면 그 행위의 정당함을 토론하고 싶은데 누구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 블랙리스트라는 행위는 김 전 실장으로 주도되는 정권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철저히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해 모든 자기들이 가진 공권력을 동원한 것”이라며 “그것은 민주주의 질서와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생각하는 민주사회는 정부가 지원하면서까지 (정부를) 비판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이것과 반대로 자기들을 비판하는 세력을 공공의 자산을 이용한 국가 예산과 제도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핍박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헌법 가치 훼손행위”라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또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뒤 조윤선 전 장관이 신윤택 전 차관을 통해 자신을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 가족여행 가 있는 동안 조윤선 장관이 전임 신윤택 차관을 통해 (저를) 회유하려 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굳이 얘기하면 거꾸로다. 제가 조윤선 장관에게 (여행을0 가기 전에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인사정리를 과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신 전 차관을 통해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 전 차관이 이같은 내용을 조 전 장관에게 전달한 문자메시지 내역을 본 특검이 회유 의혹으로 오해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 전 장관은 또 문체부 직원들에 대한 이해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특검에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정리해 전달했는데, 그 과정에서 문체부 현직 후배들을 설득해 자료를 받았다”며 "김 전 실장이 구속되는 단계까지 가는 과정에서 특검의 노력도 많았지만, 그 기본에는 핍박을 받으면서까지 (블랙리스트 때문에)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던 분들이 자료를 모아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유 전 장관은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이 블랙리스트를 김 전 실장에게 넘겼고, 김희범 차관에게도 전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 면직됐으며 퇴임 한 달 전쯤 블랙리스트를 직접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과 만나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며 “이런 식으로 하실 거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또 김 전 실장이 2014년 10월 문체부 1급 실·국장 6명의 사표를 종용하는 등 인사전횡을 한 정황을 폭로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이날 유 전 장관을 상대로 블랙리스트에 대해 김 전 실장이 적극 개입했는지와 박 대통령 연루 의혹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리스트가 헌법 위배라고 판단하고 있는 특검팀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발생 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 측은 이에 대해 법적 대응 방침까지 밝히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지난 22일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을 구속했다. 현직 장관 신분으로는 최초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은 조 전 장관은 장관 직을 사임했다.

1만여 명의 명단이 담긴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지난 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이들에 대한 정부의 각종 지원을 배제하고 검열을 통해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가 실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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