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뇌물공여·횡령·위증 혐의 적용 '강수' ... 18일 영장심사
삼성 측 "특검 결정 이해하기 힘들다"... '부정 청탁' 전면 부인
SK, 롯데 등 다른 대기업 수사로 확대 전망... 재계 '우려' 표명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한 후 대기업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특검팀은 이날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18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부장판사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통해 결정된다.

 

지난 12일 특검에 소환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준호 기자 junho-choi@lawtv.kr

특검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함에 있어 국가경제 등에 미치는 사안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430억원대의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삼성이 최순실씨가 실소유주로 알려진 독일의 코레스포츠(구 비덱스포츠)와 220억원대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것,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실소유주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천800만원을 후원한 것,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것 등이 뇌물공여 혐의로 적용됐다.

구체적 혐의에 대해 이 특검보는 “뇌물공여는 단순 뇌물공여와 제3자 뇌물공여를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가 공소사실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특검은 지난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에 대한 대가로 이같은 특혜 지원이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회사 자금을 부당하게 빼돌려 지원 자금을 마련했을 것으로 보고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 참석해 거짓 증언을 한 혐의 역시 추가됐다. 이 부회장이 지원 결정 당시 최씨의 존재를 몰랐을 뿐 아니라 대가성 지원이 아니라고 발언한 것이 거짓이라는게 특검의 판단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는 달리 앞서 특검 수사를 받은 바 있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사장) 등 세 사람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를 결정했다. 총수 구속에 따른 경영공백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특검, '국내 최대 기업 총수 영장' 초강수 둔 이유는

이날 특검이 국내 최대 기업 총수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박 대통령을 타식으로 하는 수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특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진행하며 '신속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약속해왔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특검의 공정성 확보에도 관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안팎의 분석이다.

이 부회장에 적용된 뇌물공여 혐의 자체가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위해 반드시 규명돼야 할 중요한 사실인데다, 이 부회장이 특검 조사와 국회에서 각기 다른 주장을 펼쳤던 점 등이 근거로 작용했다. 통상 피의자의 혐의 부인은 ‘증거인멸 우려’로 해석된다.

또한 특검이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구속한 것 역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의 전 단계로 풀이된다. 문 이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국민연금에 합병 찬성 압력을 넣은 혐의로 구속됐다.

결국 이 부회장의 경우 삼성 합병으로 경영권 승계라는 직접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주된 인물이고, 문 이사장은 이같은 상황에 도움을 준 인물인 셈이다. 문 이사장을 구속하면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면 이 역시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특검이 맞게 될 역풍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상당한 증거가 확보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증거 확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알아서 판단하라”는 답변으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 이재용 영장 청구는 다른 대기업 수사 신호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서 특검의 대기업 수사가 본격화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미·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박 대통령의 개입 정황이 드러난 만큼 의혹이 불거진 대기업에 대한 수사 역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이규철 특검보는 “다른 기업들은 향후 부정청탁 여부와 금액을 고려해 추후 조사 결과에 따라 뇌물죄 적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입건 범위를 최소화하고 조사 역시 특검과 관련된 부분만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우선 가장 먼저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이는 곳은 SK그룹과 롯데그룹이다.

SK그룹의 경우 2015년 8월 13일 단행된 최태원 회장의 광복절 특별사면과 이후 진행된 SK그룹의 미르·K스포츠재단 111억원 출연 사이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특검이 확보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영태 당시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부회장)은 최 회장을 접견하면서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숙제가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왕 회장dms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하고, 숙제는 재단 출연금을 의미한다는 얘기다.

또한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최 회장 사면 당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하늘 같은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 역시 역시 대가성 출연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의 경우 미르·K스포츠재단에 49억원을 출연한 뒤 이후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출연했다가 돌려받은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먼저 출연한 49억원의 경우 면세점 특허권 재승인 대가로 제공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70억원을 돌려받은 시점 역시 문제가 된다. 검찰의 롯데 총수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 개시 여부를 알고 있던 윗선의 누군가가 정보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 당혹감에 휩싸인 삼성… 경총, 대한상의도 우려 표명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삼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창립한 이래 총수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건희 회장의 경우 1996년과 2009년 비자금 사건에 연루됐을 당시 구속이 아닌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삼성은 이날 특검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밝힌 뒤 2시간 동안 공식입장도 내놓지 못했다. 발빠른 언론 대응으로 알려져 있는 삼성이 이랬다는 것은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가 하는 것을 짐작케 한다.

삼성 측은 한참 후에야 "특검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부정 청탁'이 있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삼성이 이처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는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이어질 경영공백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당시에는 이 부회장이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담당했다. 최지성 부회장이 주요 경영전략 수립과 인사 등의 그룹 내부 업무를, 장충기 사장이 홍보 및 기획 등 대외 업무를 담당했다. 사실상 공백 없는 경영 체계가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재 세 사람은 모두 특검의 수사 대상이다. 이 부회장은 물론 최 부회장과 장 사장 모두가 특검에 피의자로 입건돼, 수사가 본격화할 경우 사실상 그룹 경영을 담당할 인물이 없는 셈이다.

경제단체들더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이건희 회장이 3년째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마저 구속된다면 삼성그룹은 심각한 경영공백에 처하게 된다”며 “이 부회장의 범죄 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수사는 신중히 검토돼야 하며,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불구속수사를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입장문을 통해 “삼성전자는 글로벌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CEO를 구속 수사할 경우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이 매우 걱정스럽다”며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불구속 수사가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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