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현직 부장판사가 사법권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사법신뢰 추락시켜"
전현직 부장판사,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법조계 치부 드러낸 '정운호 게이트'

현직 부장판사와 검찰 수사관 등에게 사건 관련 청탁과 함께 뇌물을 건네고 회삿돈 143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운호(52)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13일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정 전 대표로부터 1억8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수천(59) 인천지법 부장판사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됐다.

이로써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로 불린 대형 법조 비리 사건의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 전·현직 부장판사가 금품을 받고 구속되는 사태가 잇따르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법원 사상 세번째로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뒤 호송차로 가면서 서류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이날 뇌물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 부장판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7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또 정씨로부터 받은 차량의 몰수와 추징금 1억3천124만원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여러 증거나 관계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김 부장판사가 직무 관련성 및 대가성이 있는 금품을 수수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혐의를 모두 유죄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권력인 사법권과 법관의 권위는 권력이나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양심에 따를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에 기초한다"며 "26년 동안 법관으로 재직해 법관의 사명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으로서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할 책무가 있는데도 이를 망각하고 범죄에 이르렀다"고 질타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4∼2015년 정씨로부터 각종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1억8천124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김 부장판사는 네이처리퍼블릭 제품을 모방한 가짜 화장품 제조·유통업자를 엄벌해달라는 등 청탁과 함께 정씨 소유의 시가 5천만원짜리 레인지로버 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을 받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의 수수액 중 1억5천여만원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뇌물수수죄가 적용됐다. 나머지 금액은 청탁 명목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죄가 적용됐다.

검찰은 앞서 김 부장판사에게 "공정성과 염결성이 생명인 재판과 관련해 국민의 사법 신뢰를 크게 훼손해 중형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대법원 법관징계위원회는 지난해 9월 김 부장판사에게 법관징계법상 최고 수위인 정직 1년을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남성민)는 이날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행동으로 사법권의 존립 근거인 국민의 사법신뢰가 현저히 추락했다"며 "죄질이 나쁘고 범정이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직 부장판사와 검찰 수사관에게 4억원 이상을 주며 정상 거래인 것처럼 외관을 만들었다"며 "횡령·배임 규모도 상당히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앞서 “정씨가 법조계 신뢰를 하락시켰을 뿐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 사법불신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줬다”면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정씨는 2014~2015년 자사 제품인 수딩젤의 가짜 제조·유통업자들에 대한 엄벌 청탁을 명목으로 김 부장판사에게 수입차 레인지로버 등 1억8천여만원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다.

또 자신이 고소한 사건을 잘봐달라며 법조 브로커 이민희(57)씨를 통해 서울중앙지검 조사과 김모 수사관에게 2억5천여만원을 건넨 혐의도 있다.

정씨는 2015년 1~2월 네이처리퍼블릭의 법인자금 18억원, 계열사 SK월드 등의 법인자금 90억원 등 108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2010년 12월 계열사 S홀딩스의 법인자금 35억원을 라미르호텔 준공비 명목으로 지원한 뒤 변제 대신 받은 35억원 상당의 호텔 내 유흥주점 전세권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도 받았다. 

당초 100억원대 원정도박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정씨는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47) 변호사에게 보석을 대가로 수십억원을 수임료로 제공했다. 그러다 보석을 받지 못하자 구치소에서 최 변호사와 수임료 반환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중 최 변호사의 팔을 꺾는 폭행 사태가 벌어졌다.

최 변호사는 정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양측이 서로 폭로전을 벌이면서 법조계의 비리가 잇달아 드러났다. 검사장 출신 홍만표(58) 변호사가 정씨의 원정도박 수사 무마 청탁을 대가로 3억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최 변호사는 1심에서 징역 6년과 추징금 45억원, 최 변호사 측 브로커 이동찬씨는 징역 8년이 선고됐다. 정씨 측 브로커 이민희씨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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