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의상 관련 일로 수십 차례 만났지만 청와대 태우고 간 적 없다"
헌재 "최순실 청와대 출입이 왜 비밀이냐, 국가안보 문제냐" 질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증인으로 출석한 이영선(38) 청와대 행정관이 중요 질문에 증언을 거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해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박 대통령 뇌물죄 논란이 일고 있는 '의상비용 대금 지급'과 관련해서는 검찰 조사 때와 다른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 행정관은 12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했다. 그는 지난 5일 2차 변론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출석하지 않았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이 행정관이 청와대에 출입기록을 남기지 않고 출입하는 이른바 '보안 손님'을 출입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고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날 변론에서 소추위원단 측은 이 행정관을 상대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질문을 집중했다.

이 행정관은 "최순실이나 '기 치료 아주머니' 등 속칭 보안손님을 데리고 청와대로 들어온 적이 있느냐"는 소추위원 측 질의에 "업무 특성상 (청와대) 출입과 관련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이영선 청와대 행정관이 12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junho-choi@lawtv.kr

소추위원 측의 계속되는 질의에도 이 행정관은 "업무 관련에 대해서는 보안 관련된 사항"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단편적인 질문에도 '보안 사항'이라며 답변을 거부한 이 행정관에 대해 권성동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본인이나 가족의 범죄사실이 아님에도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며 "재판장님께서 소송지휘권을 발동해서 있는 그대로 진술하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했다.

박한철 헌재 소장이 "가급적이면 신문 내용에 맞춰서 진술하고, 특정인이 문제가 된다면 추상적인 표현으로 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행정관의 증언 거부는 계속됐다.

이에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이 행정관에게 답변할 것을 요구하면서 "본인의 범죄와 연결됐나, 가족과 연결이 됐나. 그런 것이 아니면 증언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돈봉투 전달은 기밀이 아니고, 최순실씨의 청와대 출입은 국가안보에 관련된 문제냐"고 지적했다.

이 행정관이 "업무 관련 이야기를 할 경우 대통령 경호실 관련 법률을 위배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하자 강 재판관은 "그것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억울함을 밝힐 의무도 있다"며 "윤전추 행정관도 마찬가지인데 범죄행위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최씨의 청와대 출입이 국가기밀에 관련된 것이 아니지 않냐"며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사적인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지만 몇 차례 출입했는지는 증언할 이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이 행정관이 "대통령경호법상 소속 공무원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돼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자, 강 재판관은 "최씨의 관저 출입이 왜 비밀이냐"며 "증언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박 헌재소장도 "증인은 법정에서 증언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행정관은 대통령 의상비와 관련해서는 이전에 검찰 조사에서 말한 것과 다른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때문에 윤전추 행정관과 사전에 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 행정관은 "대통령 당선 즈음인 2012년 12월쯤 최씨를 의상실에서 처음 봤고, 당시 본인은 경호 업무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를 만나기 위해 의상실에 간 것은 아니지만 의상실에 갔더니 그곳에 최씨가 있었고, 당시 의상 담당인 '홍부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행정관은 "최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곳 역시 의상실 부근이고, 시기는 2016년 초"라면서도 "의상 관련 일로 최씨를 수십 차례 만났지만 의상에 대해 논의하거나 청와대로 최씨를 태우고 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행정관은 "비공식 업무에 (대통령) 의상을 가져오는 것도 포함된다"면서 "박 대통령으로부터 서류봉투를 받아 최씨에게 건넸고, 이 봉투를 만졌을 때 돈이란 걸 알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돈봉투를 최씨에게 전달한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소추위원 측은 "증인은 검찰에서 '의상실 존재는 본인과 윤 행정관만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본인은 의상대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고 했다"며 "허위진술 아니냐"고 캐물었다.

그러자 이 행정관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그날 아침 압수수색을 당해 정신이 없었고 오후에 검찰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며 "경황이 없어서 어떻게 발언할지 몰랐고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아 당황스러워 말을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윤전추 행정관은 박 대통령 의상대금 지급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의상실 대금을 직접 제게 줬다"며 "현금으로 받은 것 같다. 노란 서류봉투에 돈인지 서류인지 의상실에 갖다 주라고 하셨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비공식 업무를 담당하는 두 행정관의 이와 같은 진술은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의상대금을 지급했을 경우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행정관은 의상대금에 대해서는 검찰 진술과 말을 바꿔 윤 행정관과 판박이 진술을 했지만, 윤 행정관이 "최씨를 관저에서 여러 차례 봤다"고 진술한 것과 달리 관련 질문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았다. 

이 행정관은 또 최씨가 자신의 차를 탄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도 "최씨를 태운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검찰이 증거로 입수한 휴대전화 내역에 이 행정관이 최씨를 '선생님'으로 저장했고,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에게 '최선생님 들어가십니다' 등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는데 사실이냐'는 소추위원 측과 재판관의 질문에도 "거기 그런게 있다면 그런 것"이라며 모호한 답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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