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살리라 했는데 세월호 침몰 인지 시점도 안나와, 심판 자료로 부족"
대통령 측 "청와대 관저에 미용담당자 말고 당일 외부인사 출입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내용이 부족해 보완이 필요하다"며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헌재는 10일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서 박 대통령 측 대리인에게 "대통령의 기억을 살려 당일 행적에 대해 밝히라고 했는데 오늘 낸 답변서는 그 수준에 못미치고 부족하다"며 "본인 기억을 살려서 다시 제출하라"고 밝혔다.

헌재는 답변서에서 부족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보완하라고 석명을 요구했다. 박 대통령 측에서 제출한 답변서는 탄핵심판의 기초 자료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10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3차 공개 변론기일이 열리기에 앞서 헌재 관계자들이 탄핵심판 관련 각종 서류를 재판관석 으로 옮기고 있다. 헌재는 이날  오전 재판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답변서를 검토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 측의 답변서는 헌재 탄핵심판의 증거로 채택돼 탄핵 여부를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것으로 관측됐다. 세월호 7시간은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이라는 박 대통령의 주요 탄핵소추 사유와 관련이 있다.

이진성 재판관은 "답변서에 따르면 당일 오전 10시에 보고를 받아서 알게 된 것처럼 기재돼 있다"며 "기억을 살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을 언제 처음 인지했는지 밝히라"고 했다. 이어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TV를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는데 대통령은 TV를 통해 확인하지 않았는지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이 재판관은 이어 "박 대통령이 김장수 안보실장과 수 차례 통화했다고 돼 있는데 답변서에 첨부한 3가지 자료는 국가안보실에서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낸 보고서이며 그 밖의 자료는 없다"며 "최원영 복지수석과 12시 50분 통화했고 통화기록이 있다고 (답변서에 기재)돼 있다. 안보실장과의 통화기록도 있을 것 같은데 이 기록도 제출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변론에 앞서 대통령 측 대리인은 오전 9시쯤 재판부에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대통령의 행적 답변서를 제출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천1일 만이자, 헌재가 시간대별 행적을 자세히 밝히라고 요구한 지 19일 만에 제출된 답변서다.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관저에 머무른 것이 정상적인 근무 형태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은 "역대 대통령들은 가족관계와 성향에 따라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달랐을 뿐 모두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했다"며 "박 대통령은 관저에 거주하는 가족이 없어 다른 대통령보다 더 관저와 본관, 비서동을 오가며 집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게 관저는 '제2의 본관'이며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는 게 대리인단 측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 측은 "공식 일정이 없을 때의 평소와 다름 없이 집무실에서 그간 밀렸던 각종 보고서를 검토했다"며 "이메일, 팩스, 인편으로 전달된 보고를 받거나 전화로 지시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답변서를 보면, 대통령은 오전 10시쯤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침수사고에 대해 처음 서면보고를 받았다. 보고내용은 사고원인, 피해상황 및 구조상황이었다. 세월호 참사는 오전 8시 58분 시작됐다.

박 대통령 측은 그러나 참사 소식을 접했지만 중간에 오보가 있었다면서 "국가안보실장이 오후 2시50분쯤 '승객 대부분이 구조됐다는 보고가 잘못됐고 인명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 측은 이 같은 보고를 받고 바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지시했지만 도착한 시각은 이로부터 2시간25분이 지난 오후 5시15분이었다. 박 대통령 측은 "경호실의 외부 경호 준비, 중대본의 보고 준비 및 중대본 주변의 돌발상황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는 현장 지휘체계과 신속한 구조활동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대면회의나 보고 대신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을 보고 받고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당일 간호장교와 미용담당자를 제외하고는 청와대 관저에 출입한 사람은 없었다는 게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미용담당자는 이날 오후 3시22분부터 오후 4시24분까지 청와대에 머물렀고 머리 손질에는 20분이 소요됐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은 "그날 관저 출입은 당일 오전 대통령의 구강 부분에 필요한 약(가글액)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외부 인사로 중대본 방문 직전 들어왔던 미용담당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측이 '세월호 7시간' 행적을 제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데 대해서는 "대통령의 위치와 동선은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며 "당일 행적에 관해 각종 유언비어가 횡행해 국민이 현혹·선동되고 국가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부득이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를 통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며 탄핵 사유인 '생명권 보호 의무 및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 위반'을 부정했다.

박 대통령 측은 "그동안 수차례 경과를 밝혔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호 사고 원인이 대통령의 7시간인 것처럼 몰아가는 악의적인 괴담과 언론 오보로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판의 대상이 됐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든가'라는 박 대통령의 질문은 "배가 침수됐더라도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니 특공대를 투입했으면 발견할 수 있을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 측은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 김규현 안보실 차장, 박준우 정무수석비서관, 구은수 사회안전비서관, 김석균 해경청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해 세월호 관련 보고내용과 대통령 지시사항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대통령이 대응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대통령을 파면시킬 정도에 해당될지는 사실적, 법률적 양면에서 다툼의 여지가 크다"며 "전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회 소추위원단 소속 이춘석 의원은 이와 관련 "박 대통령 측이 제출한 답변서는 그동안 감사원에 제출한 자료, 세월호특조위에서 조원진 의원이 공개한 부분 등을 짜깁기한 수준"이라며 "이미 제출한 자료 정도를 정리한 것일 뿐 새로운 사항이 추가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앞서 소추위원단 측은 지난 8일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 증인신문 등을 토대로 "박 대통령 측이 자료 제출을 계속 지연하고 있어 신속한 심판을 위해 선제적으로 낸다"며 A4용지 97쪽 분량의 준비서면과 이와 관련한 1천500여쪽에 달하는 증거 등을 헌재에 제출했다.

헌재는 양측에서 제출한 자료와 오는 12일 류희인 전 세월호 특조위원 등 증인 신문 결과를 바탕으로 탄핵 사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모두 증인 불출석

한편 이날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던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 3명 최순실(61·구속)씨, 안종범(59·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8·구속)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은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출석을 거부했다. 최씨와 정 전 비서관은 9일 오후에, 안 전 수석은 10일 오전 11시가 넘어 "본인의 형사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탄핵심판에서의 진술이 부담스럽다"며 불출석 의사를 전했다.

이에 헌재는 16일 특별기일을 열고 오전 10시 최순실씨, 오후 2시 안 전 수석을 증인으로 소환키로 했다. 다음 기일에도 나오지 않을 경우 강제 구인하겠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증인신문은 19일 오전 10시로 조정됐다. 정 전 비서관의 형사재판일 다음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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