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사태 옥시 전 대표 징역 7년 선고
가습기살균제 사태 옥시 전 대표 징역 7년 선고
  • 김소희 기자
  • 승인 2017.01.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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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우 옥시 전 대표 '사기죄' 적용 안돼… "고의 없었다"
법원 "존리, 혐의 증명할 객관적 증거 부족" 무죄 선고
5년 반 만에 내려진 첫 판결… 피해자들 "고작 7년이라니"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기소된 신현우(69) 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됐다. 반면 존 리(49) 전 옥시 대표는 혐의에 대한 객관적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 5년 반 만에 내려진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는 6일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신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았고, 실증자료가 없는데도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거짓 문구 등을 용기 라벨에 써 업무상 과실을 범했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그 결과 제품의 라벨에 표시된 내용을 신뢰해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하고 사용한 피해자들이 숨지거나 중한 상해를 입게 되는 등 유례없는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피해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호흡 곤란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다가 숨지거나 평생 보조기구를 착용해야 할 중한 장애를 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 5년 반 만에 6일 열린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에 대한 선고공판 후 피해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또 "출시 전, 출시 후에라도 안전성 확보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확인했다면 비극적 사건의 확대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전성 검증을 경시해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다"며 신 전 대표를 꾸짖은 뒤 "신 전 대표 등은 옥시에서 제품 안전성에 관한 최고 책임자로서, 주의 소홀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일으키는 등 엄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신 전 대표에 적용된 혐의 중 법정형이 가장 높은 사기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신 전 대표에게 사기죄를 근거로 징역 20년의 중형을 구형한 바 있다. 신 전 대표에게 적용된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와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의 법정 최고형이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2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두 혐의에 대해서도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긴 했지만, 이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형사소송법상 신 대표가 받을 수 있는 최고 형량은 징역 7년이었다. 

결국 검찰은 신 전 대표에 대해 최대 무기징역 선고가 가능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를 함께 적용했다. 신 전 대표 등이 '인체 무해', '아이에게도 안전' 등 허위 광고 문구를 내세워 제품을 판매해 51억원에 달하는 이익을 얻은 것은 사기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제품을 사용할 경우 인체에 해로울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가로챈다는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돼야 한다"며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PHMG 농도가 낮고 유독물로 지정돼 있지 않아 안전성이 문제없다고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일부 임직원들이 해당 제품을 사용했던 점 등이 근거로 작용했다. 신 전 대표 등이 안전성을 확인할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은 맞지만, 사기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 존 리는 '무죄'… 옥시 관계자들 법적 책임지게 돼 

재판부는 이날 존 리 전 대표의 주의 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를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존 리 전 대표의 업무 태도 등은 제품의 인체 안전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당시 옥시의 업무처리에 일정한 부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한 가능성과는 별개로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인정은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의 공소사실은 존 리 전 대표가 관계자 등으로부터 보고를 받아 (위해성을)알고 있었음에도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라며 "직접 보고 관계에 있었던 거라브 제인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점, 일부 직원들의 추측성 진술이 있는 점만으로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신 전 대표와 함께 기소된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세퓨'의 오모(41) 전 대표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오씨는 가습기 살균제인 세퓨를 제조·판매해 사망 14명 등 27명의 피해자를 낳았다.

노병용(66) 전 롯데마트 대표에게는 금고 4년이 선고됐다. 금고형이란 징역과 같이 교도소에 수감되는 형벌이지만 노역을 하지 않는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 노 전 대표는 2006년 출시된 롯데마트 가습기 살균제 상품 '와이즐렉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전성 실험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과실로 사상자를 낸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노 전 대표 등에 대해 "전문지식이나 검증 없이 옥시 제품을 모방·제조·판매해 다수의 인명 피해를 일으킨 중한 결과를 발생시켰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홈플러스 김원회(62) 전 그로서리매입본부장과 이모(51) 전 법규관리팀장 등 관계자들에게는 각각 징역 5년에서 금고 3~4년이 선고됐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옥시 제품을 제조한 한빛화학 대표 정모씨에겐 금고 4년, PHMG 원료 중간 도매상인 CDI 대표 이모씨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조모(52) 연구소장 등 옥시 관계자들에게는 각각 징역 5~7년이 선고됐으며,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된 옥시와 세퓨, 홈플러스 법인에게는 벌금 1억5천만원이 선고됐다.

신 전 대표 등 옥시 관계자들은 2000년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제조·판매하면서 제품에 들어간 독성 화학물질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사망 73명 등 181명의 피해자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등)로 기소됐다.

옥시와 세퓨 등은 또 제품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인체무해', '아이에게도 안심' 등 허위 광고를 한 혐의(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도 있다.

지난 5월 14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안전성 검사 없이 유해 제품을 제조·판매해 사람을 숨지거나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 및 과실치상)로 옥시레킷벤키저 신현우 전 대표와 전 연구소장 김모씨, 선임연구원 최모씨를 구속했다. 신 전 대표가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2012년 1월 첫 민사 소송… 피해자들 "보호 받지 못하는 나라 떠나고파"

2012년 1월 살균제 피해자의 유족은 국가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상대로 첫 민사 소송을 냈다. 같은 해 8월 말엔 유족 일부가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를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지휘를 받은 경찰의 1차 수사 마무리는 2015년 9월에야 이뤄졌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지난해 1월 기존 수사 인력을 보강해 '특별수사팀'을 꾸리는 등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사망 원인이 된 폐 손상 유발 제품군을 ▲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 세퓨 가습기살균제 등 4개로 압축했다.

6개월의 집중 수사 끝에 검찰은 신현우·존 리 전 옥시 대표 등 제조·판매업체 관계자와 옥시 측에 유리한 실험 보고서를 써 준 교수 등 모두 21명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2016년 10월 환경부가 인정한 추가 피해자 35명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고, 업체 관계자들을 추가기소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150석 규모의 대법정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피해자들과 유족, 취재진 등이 재판정을 찾았다. 

재판이 끝난 직후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은 신 전 대표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는데 그 절반에 미치지 않는 형이 선고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법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임성준(14)군의 어머니 권미애(40)씨는 기자들에게 "우리 피해자들이 다른 나라 물건을 사가지고 온 게 아니다"며 "이 나라 물건을 사서 썼는데 이렇게 보호 받지 못하면 어디 가서 살겠나.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임군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만성 폐질환으로 휠체어를 탄 채 판결을 지켜봤다. 

권씨는 "성준이는 지금 15년째 앓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신 전 대표가) 고작 7년으로 죗값을 받을 수 없다"며 개탄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말 현재(12월 23일 기준)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살균제 피해자라고 신고한 누적 인원은 5천312명, 이 중 1천6명이 사망 피해자다.

이 가운데 정부가 실제 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한 인원은 695명, 보상 지원 대상자인 1~2단계 피해자는 258명에 그친다. 이에 따라 피해자와 유족,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피해 인정 범위를 늘리거나 보상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소희 기자 sohee-kim@law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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