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 /유튜브 캡처
전두환 전 대통령. /유튜브 캡처

[법률방송뉴스] 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알츠하이머로 형사재판에 불출석하겠다는 입장문에 대해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27일 광주지법은 이날 오후 2시30분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의 심리로 열리는 전 전 대통령의 공판기일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앞서 지난 26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민정기 전 비서관 명의로 입장을 내고 알츠하이머 진단 사실을 공개하며  법정 ‘출석 불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1995년 옥중 단식과 2013년 검찰의 자택 압수수색, 재산 압류 소동 등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발병의 원인으로 꼽았다. 

다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순자 여사의 입장문 전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옥중에서 시작한 단식을 병원으로 호송된 뒤에도 강행하다가 병실에서 쓰러져 28일만에 단식을 중단했는데 주치의는 뇌세포의 손상을 우려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단식 후유증으로 여겨지는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다행히도 일상생활은 물론 회고록 작성을 위한 구술 등 정상적인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2013년 검찰이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여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고, 일가 친척과 친지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재산을 압류하는 소동을 겪은 뒤 전 전 대통령은 한동안 말을 잃고 기억상실증을 앓았습니다. 그일이 있은 뒤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증세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적절한 치료 덕분에 증세의 급속한 진행은 피했지만 90세를 바라보는 고령 때문인지 근간에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 서문에서 가까운 일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5년 전의 그 소동을 겪기 전까지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 원고 작성을 위한 일에 힘을 기울여 마무리 작업만 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한때 국정을 책임졌던 전직대통령으로서 회고록을 남기는 일 또한 국민과 역사에 대한 책무라는 생각에 성치않은 몸을 달래가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자마자 민-형사소송에 휘말려 법정의 피고인석에 나가야 될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일당독재의 전체주의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전직대통령의 회고록이 출판금지를 당하고 형사소추를 당한 사례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국민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사법당국과 법원의 결정을 따라야 합니다. 전직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철저히 박탈당한 전 전 대통령으로서는 법원이 사법절차를 진행함에 있어서 예외적인 대우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선례나 관행, 국민의 법상식에 어긋나는 불이익을 그대로 수용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형사사건의 경우 토지관할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로 한다’고 형사소송법은 규정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광주의 검찰과 법원은 ‘전두환회고록이 광주에서 판매되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송을 거부했습니다. 말하자면 범죄지(회고록이 팔린 곳)가 광주라는 것인데 서울에서 판매된 회고록이 광주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광주법원의 그러한 결정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법사상 그동안 여러 명의 전직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 바 있지만 서울 이외의 지방 검찰이나 지방법원이 담당했던 사례는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또  검사가 직근 상급법원에 관할 이전을 신청‘하여야 하는’ 요건으로 ‘지방의 민심, 소송의 상황 등의 사정으로 재판의 공정을 유지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재판의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고 생각됩니다.  5.18광주사태와 관련된 형사사건을 광주의 검찰과 법원이 다룰 때 ‘지방의 민심’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광주지방법원의 공판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출석하는 일은 이러한 법리적인 문제를 떠나 아내의 입장에서 볼 때 현실적으로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의료진이 처방한 약을 복용해 오고 있으며, 광주지방법원에 대학병원의 관련 진료기록을 제출하면서 전 전 대통령의 현재의 건강 상태를 알려 준 바 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의 현재의 인지능력은 회고록 출판과 관련하여 소송이 제기되어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어도 잠시 뒤에는 설명을 들은 그 사실 조차 기억을 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정신건강 상태에서 전 전 대통령의 정상적인 법정 진술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거니와 그 진술을 통해 형사소송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한때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 불려 나와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되풀이하고,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국민들도 보기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진술과 심리가 불가능한 상황임을 살펴 볼 때,  또 시간 맞춰 약을 챙겨드리는 등 옆에 지켜서서 돌봐드려야 할 사정 등을 생각할 때 아내의 입장에서는 왕복에만 10시간이 걸리는 광주 법정에 전 전 대통령을 무리하게 출석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018년 8월26일 전두환 전 대통령 전 비서관 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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