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 중에 몇 명이나 이 말을 알까요... 전후양시·증감변경·지려천박
대한민국 국민 중에 몇 명이나 이 말을 알까요... 전후양시·증감변경·지려천박
  • 장한지 기자
  • 승인 2018.08.02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에 아직도 남아있는 외계어 같은 법률용어
‘증감+변경’ ‘지려+천박’... 사자성어 외양만 취한 황당한 '말 짜집기'

[법률방송뉴스] 전후양시’ ‘증감변경’ ‘지려천박’.

개인적으로 중국 고사를 즐겨 읽고 사자성어도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사자성어’입니다.

그런데 외양은 사자성어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전은 물론 중국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한자 조합이라고 하는데요.

황당하다 못해 기발하기까지 한 외계어 같은 법률용어.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천재 공학도 3명이 좌충우돌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인도 코미디 영화 ‘세 얼간이’입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너희들이 누군데?) 우리를 모른댄다. 튀어!”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 법전에, 이렇게 ‘얼간이’ 같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황당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3가지만 꼽아 보겠습니다.

‘전후양시’ ‘증감변경’ ‘지려천박’.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일반 시민들이 이 말들의 뜻을 알고 있으면, 알고 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의 희한한 말들입니다.

포털 어학사전을 검색해 봤습니다. ‘찾는 결과가 없다’는 메시지만 계속 뜹니다.

취재 결과 일단 우리 국어사전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말로 확인됐습니다.  

[박진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일본 법령에 등장하는 그런 한자어 용어들 중에 엄밀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그냥 상당히 좀 마구잡이로 많이 한국 법령에 그런 한자어들이 수용이 된...”

고사성어, 사자성어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전혀 안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펑위멍 / 중국어 강사]
“한자를 보면 대략 내용은 알지만... 중국에서 이런 단어를 들어본 적도 만난 적도 사용한 적도 없고... 중국인에게 말한다면 모두 이해 못해요.”

사정이 이런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법전에는 이 외계어 같은 단어들이 한둘도 아니고, 버젓이 쓰이고 있습니다.

민법 제198조 ‘점유 계속의 추정’ 조항, “전후양시에 점유한 사실이 있는 때에는 그 점유는 계속한 것으로 추정한다”, 

형사소송법 제48조 ‘조서의 작성방법’ 조항 제4항, “진술자가 증감변경의 청구를 한 때에는 그 진술을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 

형법 제348조 ‘준사기’ 조항, “미성년자의 지려천박 또는 사람의 심신장애를 이용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라는 조항이 각각 그것입니다.

일단 ‘앞 전(前), 뒤 후(後), 두 양(兩), 때 시(時)’ 자를 쓰는 ‘전후양시’는 ‘앞과 뒤의 두 시점’, 즉 어떤 특정한 기간이나 시점을 가리키는 정도의 뜻으로 민법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2년 전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법제처 국민공모에서 ‘전후양시’를 “‘어떤 시점의 처음과 끝’이라는 알기쉬운 우리말로 정비하자”고 제안한 시민이 최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공인된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입니다. 

‘증감변경’이나 ‘지려천박’은 기존에 있는 한자말을 이어붙여 조합한 것 같은데, 오히려 뜻을 짐작할 수도 없는 황당한 말이 돼버렸습니다.

증가와 감소를 뜻하는 ‘증감’과, ‘바꾸다’는 뜻의 ‘변경’을 이어붙인 ‘증감변경’. 지난해 1월 법무부는 아직도 법전에 있는 이 말을 ‘추가, 삭제 또는 변경’으로 바꾸는 형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입니다.

‘슬기로움’을 뜻하는 ‘지려’와, ‘생각이 얕고 언행이 상스럽다’는 뜻의 ‘천박’. 이 두 한자어를 이어붙인 ‘지려천박’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사리분별력 부족’으로 바꾸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습니다.  

법무부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제정 이후 60년 이상이 지났음에도 제정 당시의 어려운 말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며 "일상적인 언어사용 규범에도 맞지 않아 국민들이 그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입법예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뿐, 이 '세 얼간이' 같은 말은 아직도 우리 법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전후양시, 증감변경, 지려천박’. 대한민국 국민 중 몇 명이나 이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법률방송 ‘법률용어, 이제는 바꾸자’ 장한지입니다.

 

장한지 기자 hanji-jang@lawtv.kr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