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아버지 휴대전화 챙겨서 문 잠그고 도주
아버지 살아있는 것처럼 휴대전화 SNS 메시지도
아들 "살인 고의 없었다, 당황해서 물건 챙겨 도주"
법원 "확실한 증거 없다면 피고인 이익으로 판단"

[법률방송뉴스] 뇌병변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보던 20대 아들이 병간호 스트레스 등으로 아버지와 다투다 아버지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했습니다.

이후 이 20대 남성은 아버지를 방치하고 문을 잠그고 도주했다고 하는데. 존속살해에 해당할까요, 결과적으로 숨지긴 했지만 살인의 고의는 없는 존속폭행치사에 해당할까요. ‘오늘의 판결’, 사연은 이렇습니다.  

28살 A씨는 지난해 6월 뇌병변 병간호를 해오던 아버지와 크게 다퉜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아버지를 수 차례 때려 사망케 했습니다.

장기간 투병으로 뼈가 약해진 아버지는 갈비뼈 다발성 골절 등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후 A씨는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그냥 거실 바닥에 눕힌 채 아버지 휴대전화를 챙겨 문을 잠그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A씨는 범행 두 달 전에도 아버지를 폭행하고 길에 유기해 아버지가 당시 아들의 처벌을 원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이런 점들을 두루 감안해 A씨에게 ‘아버지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고 존속살해 등 혐의로 A씨를 기소했습니다. 

A씨는 그러나 아버지가 죽은 것을 알고 당황해서 짐을 챙겨 문을 잠그고 도망한 것일 뿐,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A씨 주장을 받아들여 존속살해가 아닌 존속폭행치사 혐의만 유죄로 봐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일단 “A씨가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갖고 잠적한 후 마치 피해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서로 SNS 메시지를 주고받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폭행 후 살아있는 피해자를 방치해 살해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최종적으론 “피해자가 폭행당한 직후 사망했다는 A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부검 결과도 이에 반대되지 않는다”며 존속살해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 판결이 오늘 나왔는데 1심과 같이 존속폭행치사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폭행 당시 뼈가 쉽게 골절될 것이라고 A씨가 예견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A씨가 살인의 고의를 가졌다는 게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이 유죄라는 의심이 들어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소법의 대원칙에 따른 판결입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만 이런 소식을 듣고 전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예전에 발달장애인 문제를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발달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이 한 결 같이 하는 말이 ‘내가 저 아이 보다 먼저 죽을 순 없고, 아이가 죽고 그 다음날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중증 질환자나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와 약자 돌봄 문제를 개인과 가정의 문제와 책임으로만 맡겨 둘 게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사회, 국가가 나눠 부담하는 공동체 사회를 꿈꾸는 건 정말 난망한 일일까요. '오늘의 판결'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법률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