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데모대에 발포해서라도 시위 진압하라"
안병하 전남도경경찰국장 "절대 발포하지 마라"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총기 방아쇠 제거 섬에 보관
보안사, 이준규 서장 고문·파면... "자위권 소홀"
38년 지나서야... 고 이준규 서장 5·18 유공자 지정

[법률방송뉴스] 국가보훈처가 오늘(12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에게 발포하라”는 신군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안사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파면 당한 고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을 5·18민주유공자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앵커 브리핑’은 5·18과 ‘어떤 경찰들’ 얘기입니다.

80년 1월 목포경찰서장이 된 이준규 서장은 그해 5월 목포경찰서장으로 ‘5·18’을 맞습니다.

‘데모데들을 향해 발포를 해서라도 진압하라’는 신군부의 지시에 당시 안병하 전남도경경찰국장은 휘하 경찰에 “공격 진압보다 방어 진압을 우선하라” “시위 학생들을 뒤쫒지 마라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 그리고 ”절대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절대 발포하지 말라”. 무소불위의 뜨는 권력이었던 신군부의 지시에 정면으로 맞서는 지시.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은 그럼에도 신군부 쪽이 아닌 안병하 국장 편에 섭니다.

혹시라도 있을 미연의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총기 방아쇠 뭉치를 제거한 뒤 총기를 목포 앞바다 '고하도'로 옮겨 보관하고 다시 목포로 돌아와 치안 유지 활동에 전념합니다.

대가는 ‘경찰 역사상 가장 무능한 존재’ 라는 낙인과 파면이었습니다.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5·18을 진압한 신군부는 5월 30일 이준규 서장을 직위해제하고 보안사에 90일 동안 감금합니다. 이 기간 모진 고문이 가해집니다.

신군부는 이 과정에 이준규 서장을 군사재판에 넘겼고, 서슬 퍼렇던 시절 목포 시민들은 ‘이준규 서장을 석방하라는 탄원서’를 냅니다.

유죄 ‘선고유예’를 받고 풀려나긴 했지만, 신군부는 “이준규 서장이 외곽 저지선 보호와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는 오명을 씌워 파면합니다.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안병하 전남도경경찰국장은 직위해제 당한 뒤 경찰을 떠났고, ‘시위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전남도경에서 파면까지 당한 경찰 간부는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유일합니다.

평생을 봉직했던 국가와 몸담았던 조직에서 그렇게 내팽겨 쳐진 이준규 서장은 그리고 5년 뒤, 고문 후유증과 지병을 이기지 못해 결국 사망합니다. 향년 58세였습니다.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안병하 전남도경경찰국장도 1988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합니다.

그 뒤 안병하 전남도경경찰국장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3년 순직 판정을 받았고, 2006년에는 국가 유공자가 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80년 광주에서부터 26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안병하 전남도경경찰국장은 경찰 사상 최초로 ‘경찰영웅’ 칭호를 받습니다.

지난 3월엔 치안감으로 추서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고 안병하 치안감에 대해 “5·18민주항쟁 당시 시민의 목숨을 지키고 경찰의 명예를 지켰다. 고인의 정신은 우리 경찰과 위민정신의 표상이다. 안병하 치안감의 삶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는 헌사를 남깁니다.

그리고 이 헌사는 고 이준규 서장의 유족들에게 마지막 '희망의 끈'이 됩니다.

‘경찰의 수치’라는 오명을 벗어내기 위해 고 이준규 서장의 유족들은 지난 수십 년 간 노력해왔지만 현실은 차가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 안병하 치안감 치하 발언에 혹시나 하는 기대에 지난 달 5·18유공자 신청을 했고 이번에 보훈처에서 받아들여진 겁니다.

그럼에도 고 이준규 서장이 안장돼 있은 곳은 현충원도 국립5·18민주묘지도 아닌 천안의 한 공원묘원, 아직 순직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시민을 지킨 죄’로 신군부의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너무 늦었고, 아직 갈 길도 멀어 보입니다. 유족들은 하나하나 풀어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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