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준비절차기일 열고 탄핵사유 9가지를 5가지 유형으로 정리
'수사기록 요청' 이의신청 기각...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증인 채택
신속한 심판 진행 의지 보여... 27일 두번째 준비절차기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준비절차기일이 22일 열렸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소심판정에서 준비절차 전담 재판관인 강일원(57), 이정미(54), 이진성(60) 3명의 수명재판관과 국회 탄핵소추위원단 권성동 이춘석 김관영 의원, 박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비절차기일을 열고 첫 3자 대면을 했다.

특히 헌재가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 사실상 박 대통령의 직접 진술과 구체적인 증거 제출을 요구하면서, 이 문제가 탄핵심판 사건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수명재판관인 이진성(왼쪽부터), 이정미,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22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소심판정에서 열린 첫 준비절차기일을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이날 본격 심리에 앞서 국회 탄핵소추의결서에 명시된 탄핵 사유 9가지를 5가지 유형으로 정리할 것을 제안했다.

강일원 재판관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탄핵 사유를 일일이 검토하지 않고, 유형별로 정리해 심판했다"고 설명했고, 양측 대리인은 이에 동의했다.

헌재가 제안한 5가지 유형은 박 대통령이 ▲비선 조직에 따른 인치(人治)주의로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를 위반한 점 ▲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많게는 수백억을 내도록 강요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남용한 점 ▲비선 실세의 전횡을 보도한 신문사를 탄압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점 ▲세월호 참사 당시 제대로 위기상황을 관리하지 못해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점 ▲뇌물을 수수하는 등 각종 형사법을 위반한 점 등이다.

헌재는 이날 열린 준비절차기일과 같은 사전 절차를 2~3차례 더 거친 뒤 본격적인 탄핵심판 심리에 들어갈 예정이다. 두번째 준비절차기일은 27일 오후 2시 열린다.

첫 준비절차기일에 앞서 국회 소추위원단 측은 이용구 변호사 등 4명을 추가 선임해 대리인단을 16명으로 늘렸고, 박 대통령 측 역시 전병관 변호사 등 5명을 더해 모두 9명으로 대리인단을 구성했다.

 

22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첫 준비절차기일에서 권성동(오른쪽에서 두번째) 국회 법사위원장 등 탄핵소추위원과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이 시각대별로 남김없이 밝혀달라"

헌재는 이날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소상히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진성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밝혀진 게 많지 않지만, 피청구인(박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았다"며 당시 박 대통령의 시각별 행적 및 입증 자료를 제출하라고 박 대통령 측 대리인에게 요구했다.

이 재판관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그날은 워낙 특별한 날이었기에 대부분의 국민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자신의 행적에 대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며 "박 대통령의 기억도 남다를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문제의 7시간 동안 피청구인이 청와대 어느 곳에 위치했었는지, 또 피청구인이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봤고, 업무 중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 시각대별로 어떤 것들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언론보도와 청문회 등에 의하면 피청구인이 당시 여러 보고를 받은 걸로 돼있는데 어떤 보고를 받았고, 보고를 수령한 시각이나 그에 대한 대응 지시가 무엇이었는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해 남김없이 밝혀달라"고 강조했다.

당초 국회는 세월호 7시간 문제를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놓고 의결서 제출 막판까지 여야가 대립하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 함구하던 청와대는 최순실 의혹 사건으로 이 문제가 재점화되자 "관저에서 보고를 받고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모든 인명 피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며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권성동 국회 소추위원장은 헌재의 이같은 소명 요구에 "신속한 탄핵심판을 진행하겠다는 재판부 의지를 읽을 수 있어 다행스럽다"며 "재판부의 세월호 7시간 규명 의지가 돋보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 대표인 이중환 변호사는 "청와대 비서실과 안보실에 연락해 구체적인 보고 내용과 지시 내용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대통령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는 취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청와대에) 직접 가서 말씀을 듣고, 수명재판관 말씀 취지에 맞게 서면을 내고 거기에 맞는 증거자료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 대통령 측 '수사기록 요청'에 대한 이의신청 기각

헌재는 이날 박 대통령 측이 "헌재가 검찰과 특별검사에게 수사기록을 요청한 것은 위법하다"며 제기한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이정미 재판관은 "헌재법 32조에 위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 측의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재판관은 국회 소추위원단에 "인증등본 송부 촉탁을 채택하겠다. 사건의 특성상 특정 수사자료를 지정해 빠른 시일 내에 받아야 재판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 같다"며 "늦어도 26일까지 지정해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과 특검에 자료 제출 의무는 없다. 헌재법 32조가 기록의 송부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강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헌재는 '인증등본 송부 촉탁'까지 검찰과 특검기 거부할 경우 '서증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강일원 재판관은 "검찰이 탄핵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다면 보내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주심인 제가 기록이 있는 곳에서 서증 조사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헌재 심판규칙 41조는 직권으로 문서가 있는 장소에서 서증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지난 21일 헌재에 제출한 '입증계획 및 증거조사에 관한 의견서'를 통해 최순실씨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모두 28명을 탄핵심판 증인으로 신청했다. 박 대통령 측은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강일원 재판관은 "최씨, 안 전 비서관, 정 전 비서관은 상당히 중요한 증인으로 보여지고, 청구인 측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제외하더라도 이 세 사람에 대해서는 증인 신청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보인다"면서 "세 사람을 증인으로 채택한다"고 밝혔다.

국회가 신청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나머지 증인 25명과 대통령 측이 신청한 조원동 전 경제수석에 대한 채택 여부는 차후 검찰의 수사기록 제공 여부에 따라 조율하기로 했다.

국회 소추위원단은 의견서에서 본 심판 절차에 들어가면 헌재가 박 대통령에게 출석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현재 헌재법상 당사자 출석을 명하는 명문이 탄핵심판 절차에서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며 박 대통령이 출석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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