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부모 잃고 북한 전전하다 1960년 중국 이주
90년대 한국 들어와 '귀순' 신청했지만 강제추방명령

[법률방송뉴스=유재광 앵커] 내일(12일)은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입니다.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정상회담을 여는 건 북한 정권 수립 7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인데, 모쪼록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봅니다.

관련해서 오늘 판결로 읽는 헌법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입니다.

일제시대인 1937317일 강원 화천군 상서면에서 태어난 A씨가 있습니다.

6·25 전쟁통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10대 초반에 천애고아가 된 A씨는 이후 북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다가 24살이던 1960년 중국으로 넘어갑니다.

이후 중국에서 살던 A씨는 한국과 중국의 왕래가 다시 막 시작되던 19929, 한국계 중국인 남편과 함께 중국여권30일짜리 단기방문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온갖 궂은일을 마다안하며 억척스레 돈을 벌던 A씨는 199311월 황망한 일을 겪습니다. 함께 간난을 나누던 남편이 술 취한 사람에 폭행당해 사망한 겁니다.

그 후 어찌어찌 하다 A씨는 고향인 강원 화천에서 숙모와 4촌 형제를 만나게 됩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편도 잃고 혈혈단신이 된 북한 국적의 A씨는 고향에서 남은 생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고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찾아가 귀순의사를 표시합니다.

우리 수사당국은 그러나 중국여권을 가지고 있는 A씨를 중국인’, 그러니까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보고 A씨에 대해 강제퇴거명령, 즉 추방 명령을 내립니다.

이에 강제퇴거명령 취소 소송이 진행됐는데 핵심 쟁점은 A씨가 외국인이냐 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 대해선 강제퇴거명령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서울고법 판결문입니다.

일단 관련자 증언 등에 의하면 A씨는 1977년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해외공민증을 발급 받았고, 1987년에는 중국정부로부터 외국인거류증을 발급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씨가 중국인이 아닌 북한 국적이라는 얘기입니다.

재판부는 A씨가 중국여권을 가지고 있는데 대해서도 뇌물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국여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리상 논점은 이제 하나로 압축됩니다. 북한 사람인 A씨를 외국인이 아닌, 즉 대한민국 국민으로 볼 수 있느냐 입니다. 그렇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입니다.

헌법 제3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가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조선국적을 취득한 A씨는 1948. 7. 17. 제헌헌법의 공포와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였다고 전제했습니다.

이 전제 위에 재판부는 "설사 A씨가 북한법의 규정에 따라 북한 국적을 취득하였다 하더라도 북한지역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에 속하는 한반도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A씨가 북한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정은 A씨가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하고 이를 유지함에 있어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피치 못 할 사유로 북한 국적을 취득했고 이후 중국에서 살았지만 A씨는 여전히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재판부 판단입니다.

해당 법원 판단이 95년에 내려졌으니 이후 20년도 더 넘게 흘렀습니다. A씨가 고향화천에서 한평생 고단했던 삶을 내려놓고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불어 A씨의 인생사에 비극을 낳았던 씨앗이자 원천, 6.25 한국전쟁,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포함한 전향적인 결과들이 나오길 다시 한 번 바라봅니다. 판결로 읽는 헌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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