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소추위원단, 26쪽 분량 답변서 공개… 탄핵사유 전면 부인
"봉하대군, 만사형통… 전례 있다" 전직 대통령 끌어들여
"국회 탄핵소추 의결은 무죄 추정 원칙 위배한 반헌법적 행위"

국회 탄핵심판 소추위원단과 대리인단은 18일 첫 연석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대리인단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를 논란 끝에 공개했다.

야당 소추위원들의 답변서 공개 요구에 대해, 당초 비공개를 원칙으로 했던 국회 측 소추 대리인인 권성동 국회 법사위원장은 "재판 전에 서로의 주장이 공개되면 여론재판, 언론재판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소추위원단의 의견을 존중해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답변서는 A4용지 26쪽 분량이다. 박 대통령은 답변서를 통해 "탄핵소추가 아무런 증거 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부적법하고,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에 기재된 헌법 위배 행위 5개, 법률 위배 행위 8개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국회 소추위원단과 대리인단은 이 답변서에 대한 반박 의견서를 22일까지 헌재에 제출하기로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법률대리인단이 지난 16일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제출한 답변서를 헌재 직원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국가 정책이나 고위 공직 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며, 최씨가 개인적 이익을 추구했더라도 박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 대통령 측은 "언론이 제기한 의혹만 놓고 봐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총량 대비 최씨 등의 관여 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측은 '백악관 버블'(White House Bubbl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거대한 거품 속에 갇힌 채 민심과 멀어지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이 최씨의 의견을 반영한 것은 거품 밖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시도라는 논리다.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일부 반영했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로,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박 대통령 측은 최순실씨와의 관계에 대해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격의 없이 조언을 듣고 의지하는 비공식 자문위원들을 가리키는 이 말은 대통령과 어떠한 사적 이해나 정치관계로 얽혀있지 않아 여론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박 대통령 측은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며 연설문 유출에 따른 공무상 비밀누설죄에 대해 "지인의 의견을 청취한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이 연설문을 최순실에게 한 번 살펴보게 한 이유는 직업 관료나 언론인 기준으로 작성된 문구들을 국민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일부 표현에 관해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며 "미리 외부에 알리거나 국익에 반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없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 측은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례를 각각 3차례, 2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봉하대군'이라고 불렸던 사례,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만사형통'이라며 여러 경로를 통해 대통령에게 민원을 전달한 이상득 전 국회의원 사례 등이 있다"며 "전임 대통령도 다양한 방법으로 인사에 관한 의견 민원 등을 청취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에 "장·차관 등을 최씨 등이 추천한 사람으로 임명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2013년 3월 행자부 1급 공무원 11명이 사표를 제출했는데, 같은 논리라면 노 전 대통령 역시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에서도 감사원, 총리실, 교과부, 국세청, 농식품부 등 1급 간부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고 했다.

최씨 등의 관계 회사 등에 박 대통령이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과거 '신정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변양균 전 정책실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예를 들기도 했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은 "자발적 기금 모집"으로 뇌물죄, 직권남용죄, 강요죄 등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은 어떤 대가를 조건으로 기금을 부탁하거나 기업이 대가를 바라고 출연한 것도 아니므로 뇌물 수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최씨 등에 대한 1심 형사재판 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친 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두 사람이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씨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박 대통령의 문제로 보는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헌법 제13조 3항에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된 연좌제 금지는 친족 간에 해당되는데, 박 대통령과 최씨는 친족이 아니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최씨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을 '공동정범'으로 규정한 바 있다.

논란이 되는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해서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사고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근무하면서 유관기관 등을 통해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고 대규모 인명피해 정황이 드러나자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지휘를 했다"며 "대응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적법한 탄핵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탄핵 사유로 '4~5%대의 낮은 지지율과 100만 촛불집회'가 언급된 것에 대해서도 "일시적 여론조사 등을 근거로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것은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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